기득권 상실 우려하는 친문 투항…‘공천·조직·대권후보’ 3대 권력원천 차지 제왕적 당대표 눈앞에 한국 정당, 미국과 달리 ‘개인화한 권력구조’ 특질… 당대표·대선후보 등장 따라 급격한 주류교체 반복
더불어민주당의 ‘권력 이동(파워 시프트)’ 속도가 가파르다. 당의 주류세력이 ‘친문(친문재인)’에서 ‘친명(친이재명)’으로 빠르게 재편 중이다.
이는 당권 후보인 이재명 후보가 이미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의 모든 인센티브 시스템을 장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민주당의 친명화는 미국과 같은 ‘제도화한 권력구조’가 아니라 다분히 ‘개인화한 권력구조’를 갖는 한국 정당정치의 한 특질이기도 하다.
◇민주당 주류교체
당 대표를 뽑는 민주당의 8·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후보가 배타적 지지를 받으며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1차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80% 가까운 득표를 기록했다. 강력한 친문 후보가 없는 가운데 ‘결대명’(결국 대표는 이재명)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상위 5명 중 4명이 친명계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변방의 투사’였던 이재명 세력이 지금과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조직이 보상을 통해 조직원의 기여를 유도한다는 ‘인센티브 이론’ 관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피터 클라크와 제임스 윌슨 두 학자는 공저 ‘인센티브 시스템: 조직이론’에서 세 가지 유형의 인센티브를 구분했다. 첫째 ‘물질적 인센티브’. 금전적인 것을 포함한 유형의 보상이다. 구성원에게 자금·직책·정보 등 물질적 혜택을 주면서 조직을 유지한다. 둘째 ‘연대적 인센티브’. 특정 조직에 소속되고 그 조직에서 행동함으로써 얻는 보상을 말한다. 사회성과 지위에 대한 대가로 조직을 위해 일한다. 셋째 ‘목적적 인센티브’.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 실현을 통해 얻는 무형의 보상이다. ‘정권교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가 인센티브가 된다.
구성원의 충성도와 조직의 연속성은 이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 최근까지 친문은 당내 주류세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3·9 대선과 6·1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권력구도가 급격하게 뒤바뀌고 ‘이재명 쏠림 현상’이 확고해졌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이후 친문이 구심점을 잃었다거나 친문에 차기 유력 주자가 없다는 점 등이 그 이유로 거론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동안 친문 활동의 동력이었던 인센티브가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개인화한 권력구조
지난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민주당에서 권력의 3대 원천은 ‘누가 공천권을 갖게 될지’(물질적 인센티브), ‘누가 견고한 조직을 갖는지’(연대적 인센티브), ‘누가 차기 유력한 대권 후보가 돼 정권을 교체할지’(목적적 인센티브)이다.
친문은 겉으로는 이념과 가치에 바탕을 둔 연대적·목적적 인센티브로 뭉친 것처럼 보이지만, 물질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특성 또한 크다. 따라서 권력 지각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앞으로 닥칠 정치적 손실을 두려워하면서 새로운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인물과 조직에 빠르게 순응하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친명, 특히 이재명에게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개딸 ’(개혁의 딸)과 같은 팬덤에겐 연대적·목적적 인센티브가 더 강하다.
결국 연대적·목적적 인센티브를 갈망하는 친명의 약진에 물질적 인센티브 상실을 우려하는 친문이 투항하면서 민주당 주류세력 교체의 동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민주당이 급격하게 친명당으로 전환한다는 건 거꾸로 이는 이재명 후보가 모든 인센티브 시스템을 장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의 경우 정당조직은 로컬(local)위원회→주(state)위원회→전국(National)위원회 등 선거구 수준에 맞춰 조직된 일련의 위원회로 구성돼 ‘제도화한 권력구조’를 갖췄다. 한국의 정당은 당 대표의 지시와 통제로 움직이는 ‘개인화한 권력구조’다. 즉 한국에서는 당 대표가 되면 인센티브 시스템이 독점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것이 ‘패권적 계파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이고, 당 대표나 대선 후보가 출몰함에 따라 급격하게 주류교체가 일어나는 이유다.
◇과거로부터 배운다
이재명과 민주당의 미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시절의 그것과 데칼코마니가 될 가능성이 크다. 1997년 집권당인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당내 비주류 이회창은 최대 계파인 민주계 후보들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구주류는 빠르게 분열됐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야당이 폭로한 아들 병역 비리 의혹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김대중 후보에게 1.6%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이회창은 대선 패배 8개월 후에 치러진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 압승하면서 다시 ‘1인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2000년 4월 총선 때 김윤환·이기택 등 구정치인 공천 학살을 통해 ‘이회창의 한나라당’을 만들며 막강한 권력 기반을 다졌다.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된 이회창은 또다시 총재에 선출됐고, 더 강해진 ‘이회창 대세론’을 등에 업고 2002년 대선에 다시 나섰지만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이 또다시 불거져 이번엔 노무현 후보에게 패했다.
이재명 후보 또한 이번 전당대회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아 당 대표가 되면 자신이 공언한 대로 ‘이재명의 민주당’ 만들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은 이미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막아내기 위해 ‘방탄용’ 당헌(80조 3항) 개정을 확정한 상태다. 공천권을 장악하면 이 후보는 2024년 총선에서 반대파 공천 학살로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경로를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당이 쪼개질 수 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전망이다. 특히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방출되는 수순에 들어간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민주당의 분당 시나리오는 힘을 받게 될 게 확실하다. 과거 이회창 사례의 데자뷔와 같은 이런 흐름은 2027년 집권 플랜에 몰두하는 이 후보에겐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
◇예측불허한 정치
한국 정치는 오묘한 데가 있다. 이재명 후보가 당 대표가 된다 해도 사법 리스크로 정치적 제약을 받는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친문 부활의 상징으로 정치무대에 재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부 다양성과 합리성을 키우지 못한 채 독선적인 게토를 구축하는 ‘나 홀로 이재명당’으론 차기 총선을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권은 단순한 권력이동이나 주류세력 교체를 넘는, 권력 본질 자체의 심층적 변화에 귀 기울여야 한다. 권력의 본질적 변화는 개인화한 권력구조가 아닌 제도화한 권력구조라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창출에서 비롯된다.
명지대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세줄 요약
민주당 주류교체 : 민주당 내 권력 이동 속도가 가파름. 3·9 대선과 6·1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권력구도가 급격하게 뒤바뀌고 ‘이재명 쏠림 현상’이 확고해짐. 당 주류가 친문에서 친명으로 빠르게 교체·재편 중.
개인화한 권력구조 : 정당·기업 등은 조직의 물질적·연대적·목적적 인센티브 시스템을 활용해 개인의 조직에 대한 기여를 유도함. 당의 급속한 친명화는 이재명이 당내 모든 인센티브 시스템을 장악했다는 걸 뜻함.
예측불허한 정치 : 개인화한 권력구조는 한국 정당정치의 한 특질임. 하지만 이는 과거 당을 ‘1인 지배체제’했던 이회창의 두 차례 대선 패배에서 보듯 이재명의 2027년 집권 플랜에 최악 시나리오가 될 수 있음.
■ 용어설명
‘인센티브 시스템’은 행정학자 피터 클라크와 제임스 윌슨이 1961년 발표한 조직이론 관련 논문. 조직은 물질·연대·목적 등 3대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개인의 기여를 유도한다는 가설을 증명.
’개딸’은 ‘개혁의 딸’을 줄인 말로 이재명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자를 가리킴. 과거 노무현 정권의 ‘노빠’, 문재인 정권의 ‘문빠’처럼 정치에 깊이 개입하면서 이재명 정권 창출을 추구하는 팬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