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영규의 지식카페 - (11) 의녀들의 직장 생활 Ⅲ
‘첩’ 되면 양인 신분으로 상승 ‘최고의 행운’으로 여겨
자식도 천민 신분에서 벗어나 큰 혜택
왕족·젊은 선비들과 ‘몰래한 연애’ 다반사
세간에선 ‘관기’로 취급받아 정상적인 결혼 생활 힘들어
조선의 양반들은 의녀를 첩으로 삼는 것을 아주 선호했다. 특히 궁궐에 근무하는 내의녀의 인기가 최고였다. 의녀는 기본적으로 건강을 잘 돌보는 데다 침도 놓고 안마도 잘했으며, 한문도 알고 머리도 좋았다. 거기다 미모까지 갖췄다면 금상첨화였다. 그래서 인물이 출중한 의녀는 양반들 사이에서 인기가 아주 좋았다. 그런 의녀를 첩으로 얻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을 정도였다. 이렇듯 의녀는 양반들에게는 첩 선호도 1위였다.
그렇게 의녀를 첩으로 삼은 양반은 자신의 집안 여종을 의녀 대신 관비로 넣고 의녀를 관비 신분에서 해방시켜 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의녀는 양인 신분이 되고, 비록 서출이지만 그 의녀의 자식도 양인으로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의녀들도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최고의 행운으로 여겼다.
이런 까닭에 의녀 중에는 양반과 몰래 사귀는 경우가 많았다. 성종 15년 5월 28일의 고언겸에 대한 사관의 다음 논평은 그런 세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고언겸이 젊었을 때 서부학당에서 글을 배웠는데, 경인년에 선비들이 비단을 모아 학당에 둔 적이 있었다. 고언겸이 하루는 틈을 노려 명주 두어 필을 훔쳐 품속에 숨겼는데, 그것이 옷 밖으로 드러난 것을 깨닫지 못했다. 동료들은 그것을 보고도 차마 말을 못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자가 고언겸의 집에 찾아와 그 말을 전했더니, 고언겸은 자기에게 사통하는 의녀가 있어서 그녀에게 주려고 이런 옳지 못한 짓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비단을 돌려보낸다면 틀림없이 자기를 진짜 도적으로 몰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이 고언겸의 이야기 속에서 그가 ‘사통하는 의녀가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렇다. 당시 의녀들은 고언겸 같은 젊은 선비와 몰래 만나며 사랑을 나누는 상대로 적임이었다. 기녀처럼 노골적으로 술을 따르고 몸을 팔진 않지만, 의녀들은 기녀 이상으로 양반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것이다. 임자가 따로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녀처럼 돈 때문에 몸을 팔지도 않으면서, 은밀히 정을 통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의녀였다. 혹여 의녀가 아비 모르는 애를 뱄다고 해도 세간에선 그저 당연한 일로 치부했으니, 사달이 날 염려도 없다는 것이 의녀를 건드렸던 당시 양반들의 생각이었다. 또 그러다 정말 마음에 들면 집안에 거느리는 여종 한 명을 관비로 바치고 의녀를 첩으로 들이면 됐으니, 양반과 의녀 사이의 연애는 서로에게 손해될 것이 없었다.
의녀 중에는 인물이 출중하여 왕족과 연애를 나눈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여자가 세종의 아들 평원대군과 사랑을 나눴던 백이라는 의녀였다. 그러나 평원대군은 19살의 어린 나이로 죽었고, 의녀 백이는 그 뒤에 이사평과 사랑을 나누다 그의 첩으로 들어갔다. 이사평은 대마도 정벌을 이끌었던 이종무의 셋째 아들이었다. 이종무는 정종의 서10남 덕천군에게 딸을 시집보냈으니, 왕실의 외척이기도 했다.
이사평이 백이를 첩으로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세종은 무섭게 화를 냈다. 평원대군은 세종이 몹시 총애하던 아들이었고, 그 아들이 좋아했던 여자가 남의 첩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으니 어느 아빈들 기분이 상하지 않았겠는가? 더구나 왕자와 염문이 있던 의녀를 공신의 자식이, 그것도 왕실과 사돈 관계를 맺은 외척의 자식이 첩으로 취했으니, 그냥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말하자면 인척 간에 한 여자를 가까이했으니 법도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는데, 세종은 그런 명목으로 선공감의 정(正)으로 있던 이사평을 파직시켜버렸다.
이사평 또한 백이를 첩으로 얻으면 파직을 당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취한 것을 보면, 백이란 여자가 꽤나 절색이었던 모양이다. 백이 또한 이사평의 첩이 되면 세종의 미움을 살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죽은 평원대군만을 생각하며 늙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사평의 첩이 되는 순간 관노의 신분에서 해방되고, 기생 취급받는 의녀 일도 그만둘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낳은 자식은 비록 서출일지언정 천민 신분에선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 의녀들이 양반의 첩이 되길 원했던 것은 바로 이런 혜택을 누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남의 첩이 된 뒤에도 대다수는 의녀의 직분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남자들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곧잘 사달을 일으키기도 했다. 태종 13년 4월 19일에 사헌부에서 대사헌 안성을 간통죄로 파직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안성이란 인물은 원래부터 여자를 꽤나 밝히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심지어 전라도에서 관직 생활을 하며 완산의 기생 옥호빙을 사랑하다가 경상도 관찰사로 발령이 나자 경상도로 기생을 데리고 갔다. 그는 옥호빙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완산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는데, 이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삼군부의 총제 이징의 첩이었던 의녀 약생과 간통하다가 이징에게 붙잡혀 매를 맞았다. 이징은 그가 안성인 줄 알았지만, 일부러 모른 체하고 매만 때렸다고 했다. 세상에 알려져 봤자, 자기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헌부에 그 사실이 알려져 사헌부 관리가 자신들의 수장인 대사헌을 탄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선시대 의녀들은 이렇듯 원만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다. 세간의 눈이 그들을 관기 버금가는 추잡한 여자들로 취급하였고, 그들 역시 정조 관념이 매우 약한 편이라 여염집 아낙으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의녀들은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우는 게 다반사였고, 결혼을 여러 차례 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비록 어쩌다 결혼을 했다손 치더라도 구박받거나 버림받기 일쑤였다. 이런 의녀의 기구한 처지를 고려한다면 그들이 양반의 첩으로 가는 것을 이상적인 결혼으로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의녀에 대한 조선 남성들의 시각은 수작을 걸어 성공하면 한껏 잘 즐길 수 있으며, 그런 뒤에도 거의 뒤탈이 없는 대상이라는 정도였다. 그런 까닭에 의녀와 얽힌 섹스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혜민서의 관원이 되면 의당 의녀들과 놀아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이런 현상은 연산군이 의녀들을 기생 취급한 뒤에 더욱 심해졌다. 의녀가 가장 많은 곳은 전의감과 혜민서인데, 이곳 관원들은 종종 의녀들과 간통 사건을 일으켰다.
하지만 의녀 간통은 단순히 의녀를 거느린 의료 기관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았다. 중종 시절에 순천 부사를 지낸 김인명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순천 부사로 가기 전에 한양에서 근무하며 의녀 진금과 정을 나눴다. 그리고 순천 부사에 임명되자, 진금을 데리고 순천으로 내려갔다.
의녀의 신분은 관비이기 때문에 함부로 옮겨 다닐 수 없으며, 또 관리가 사사로이 데리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나 김인명은 임실 현감 유근에게 의녀 진금이 임실에 사는 것처럼 문서를 위조해달라고 했다. 부사의 부탁을 받아들인 유근은 진금이 임실에 적을 두고 사는 의녀인 것처럼 문서를 꾸몄다. 하지만 얼마 뒤에 진금이 사라진 것을 알고 형조에서 진금을 추적하다가 결국 순천에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일로 김인명은 관직에서 쫓겨나고, 유근 또한 파직을 당했다. 의녀에 대한 연정 때문에 패가망신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의녀 간통 사건 중에는 아주 특이한 경우도 있다. 연산군 시절의 일인데, 해남의 노비 말금의 간통사건이다. 말금은 해남의 사노(私奴)였는데,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그가 죄수들의 건강을 살피는 의녀 은금과 간통을 한 것이다.
죄수의 신분으로 어떻게 의녀와 간통했는지는 상세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나, 강간이 아니라 간통이라고 한 것으로 보면 은금 또한 말금을 좋아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일로 말금은 참수형에 처해졌으니, 연애 한번 잘못 했다가 목숨이 달아난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

■ 용어설명 - 삼군부(三軍府)
조선 초기 군무(軍務)를 관장한 관청. 고려 말 이성계가 병권(兵權) 장악을 위해 설치한 삼군총제부를 1393년(태조 2) 의흥삼군부로 개칭했다. 중·좌·우군의 3군으로 나뉜 최초의 강력한 중앙 군사체제로 1400년(정종 2) 중추원에서 관장한 군무의 일부를 흡수해 삼군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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