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브레이크
"뭐라고 부를까?” 이럴 때 혀에 감기는 노래가 있다. ‘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고 부르리까’ 제목도 ‘님이라 부르리까’(원곡 이미자)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탄식으로 끝나는 노래다. ‘그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 울어야만 됩니까/ 울어야만 됩니까’. 해피엔딩이 아닌 이유가 가사 중간에 독백처럼 나온다. ‘마음으로만 그리워/ 마음으로만 사무쳐’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그리움이건 사무침이건 제때 제대로 전달되는 게 낫다. 당사자끼리 진심을 말로 표현하고 그 말이 다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세상의 그 많은 오해와 원망도 조금은 잦아들 것이다.
호칭도 그렇지만 말의 형식(특히 끝처리)도 중요하다. “말 놓으세요.” 하지만 정신 줄을 놓아선 곤란하다. ‘한동안 좋아했던 옛사랑을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쳤네/ 존댓말을 써야 할지 반말로 얘기해야 할지 서먹서먹해지네’. 민해경의 이 노래는 제목이 긴 걸로도 유명하다. ‘존댓말을 써야 할지 반말로 얘기해야 할지’ 무려 17자다. 이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옆 차가 계속 인사(?)를 한다. 순간 ‘저 사람이 누구더라’ 그와 동시에 ‘존댓말을 써야 할지 반말로 얘기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에라 모르겠다.’ 모험을 결심하고 신호등 앞에서 창문을 내린다. “반갑다. 어디 가?” 그때 상대방의 당황하던 표정이 지금도 아찔하다. “저 아세요?” 그는 길을 묻던 초행자였고 나는 착각의 마당발이었던 거다. 길을 묻는 자에게 안부를 묻다니 백주의 동문서답이 아닐 수 없다. 내비게이션 없던 시절의 토픽 같은 이야기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땐 상대가 나를 어떻게 부르느냐로 대충 관계를 가늠한다. 나의 경우 인연이 시작된 곳이 학교냐 방송사냐에 따라 호칭이 다르다. 대학가요제를 연출할 때 만난 학생들(지금은 학부모들?) 중에 지금도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 호칭은 여전히 ‘PD님’이다. 1995년으로 무대를 전환하자. 리허설 때 출연자들에겐 행동 반경이 주어진다. 카메라와 조명, 음향감독이 약속된 동선에 따라 세팅을 미리 해두기 때문이다. 이날 생방송에서 기술팀을 당황하게 만든 출연자가 있었다. 참가번호 4번 연세대 소나기 팀이었다. 보컬(이원석)은 종횡무진하며 관객을 흥분시켰고 제작진은 그의 돌출을 뒤쫓느라 본의 아니게 광분했다. 공교롭게 그날 그들이 부른 노래 제목도 ‘엇갈림 속에서’였다. ‘내 마음속 숨 쉬는 꿈 하나/ 나만의 것이라 난 믿었지/ 하지만 넌 원치 않았어/ 네 고집대로 네 인생이 될 순 없다고’.
지난주에 열린 ‘썸머매드니스 2022’ 공연(8월 15, 16일)의 부제는 ‘스파크’였다. 무대를 불사른 주인공은 밴드 데이브레이크. 노래 제목처럼 시종일관 무대를 ‘들었다 놨다’ 했다. 그 중심에 귀여운 악동(樂童) 이원석이 있었다. 무대 위에선 뜨거운 불꽃이지만 내려오면 해맑은 풀꽃 같은 이미지. 정치색이라곤 1도 없어 보이는 밴드인데 우연찮게도 지난 정부 출범 100일 국정보고행사(2017)에 초대된 까닭은 순전히 그들의 히트 넘버 ‘꽃길만 걷게 해줄게’ 때문이라 짐작한다.
꽃길 앞뒤엔 대체로 가시밭길이 있다. ‘가시밭길 산을 넘고 강을 건너’(조용필 ‘일편단심 민들레야’ 중), ‘돌부리 가시밭길 산을 넘어’(나훈아 ‘천리길’ 중). 데이브레이크는 이름처럼 새벽을 향해 달리는 모터사이클 같다. 그들은 말로 하지 않고 노래로 미래를 부른다. 딱 한 번만 들어도 뭐가 좋은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멋진 말들로 꾸며댈수록/ 나의 마음을 가릴 것 같아/ 빼고 또 빼고 줄여갈수록/ 보석과도 같이 남아 있는/ 이 한마디/ 좋다 사랑해서 좋다’(데이브레이크 ‘좋다’ 중).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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