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루브르 최고 인기 작품인 모나리자는 1911년 도난 사건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AP 연합뉴스
1911년 8월 22일, 화가 루이 베루는 여느 때처럼 루브르 박물관에 ‘모나리자’를 보러 갔다가 벽에 못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경비원은 도록을 만들기 위해 사진 찍는 중일 것이라 했지만 확인해 보니 아니었다. 그림이 사라진 지 24시간이 지나도록 눈치채지 못했던 박물관은 발칵 뒤집혔다.
언론은 도난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루브르의 관리 소홀을 비판했고 모나리자와 작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기사들을 연일 쏟아냈다. 대대적인 보도로 당시에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나리자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고 급기야 그림이 걸려 있던 빈 벽이라도 보겠다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찰은 국경까지 봉쇄하고 수사를 벌였지만 오리무중이었다. 예술가의 상상력을 마비시킨다며 박물관을 파괴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던 ‘미라보 다리’를 쓴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장물인지 모르고 조각상을 구매한 이력이 있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용의 선상에 올랐지만 둘 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행방이 묘연하던 범인은 2년 뒤인 1913년에 검거됐다. 루브르에서 보호용 액자를 제작할 때 유리공으로 일한 이탈리아인 빈센초 페루자였다. 페루자는 휴관일에 몰래 들어가 액자에서 그림을 빼내 외투 속에 숨겨 나왔고, 피렌체의 미술상에게 10만 달러에 팔려고 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는 이탈리아의 작품을 조국에 돌려주기 위해 훔쳤다고 주장해 국민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다. 페루자는 감옥에서 7개월을 살았고 모나리자는 루브르로 돌아왔다.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사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루브르의 수많은 작품 중 하나였다가 도난을 당하면서 유명해진 모나리자는 이후에도 각종 수난을 당했다. 지난 5월에는 “지구를 생각하라”고 외치며 한 남성이 케이크 조각을 던졌는데 1956년 황산 테러와 돌멩이 세례 이후 방탄유리에 싸여 있어 손상을 입지는 않았다. 1974년 일본에서 전시될 때에는 박물관 관람 정책에 불만을 품은 관람객이 빨간 페인트를 뿌렸고 2009년에는 프랑스 시민권을 받지 못한 러시아 여성이 홧김에 찻잔을 던지기도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간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고, 신비로운 미소를 보기 위해 모나리자 앞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는 미술품으로 프랑스 정부는 그 경제적 가치를 최대 40조 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