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중국 베이징 순이구의 옛 현대자동차 제1공장 입구가 가벽으로 막혀 있는 가운데 공장 옆 건물이 로고와 간판이 떨어져 나간 채 리모델링을 기다리고 있다.
22일 중국 베이징 순이구의 옛 현대자동차 제1공장 입구가 가벽으로 막혀 있는 가운데 공장 옆 건물이 로고와 간판이 떨어져 나간 채 리모델링을 기다리고 있다.


■ 한·중 수교 30년 - <上> 위기의 한·중 관계

베이징 순이구 일대 가보니…
큰 기대 모았던 현대차 공장
中 산업재편에 가동중단·철거
협력업체 문닫고 식당도 폐업

한·중 갈등보다 미·중 갈등 탓
사드 배치로 껄끄러워진 관계
미·중 패권전쟁이 기름 부은 격
교민 자력극복 한계 ‘엑소더스’


베이징 = 글·사진 박준우 특파원

중국에 29년째 거주하고 있는 사업가 김모(55) 씨는 최근 현지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지난 1992년 한중수교 직후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인과 결혼했고 현지에 정착했지만 높아진 반한감정, 어려워지고 있는 사업 환경 등으로 향후 사업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자신이 경영하는 식당을 돌아보던 김 씨는 “최근 잡히는 회식 대부분은 한국으로 귀국하려는 이들을 위한 송별회”라며 “30년간 잘 진행됐던 한·중 관계가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냉각한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여기서 초창기 어려움을 견뎌내고 청춘을 바쳤던 사람들이 눈물로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을 보니 나도 오래가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해했다.

오는 24일로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지만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양국관계가 틀어진 이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양국 간 교류가 미·중 갈등의 국면이 계속되며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지 교민들은 미·중 관계까지 더해져 한층 복잡해진 한·중 관계가 단시간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탈중국’을 택하고 있다.

◇중국 산업 구조 변화보단 강해진 반한감정에 엑소더스=22일 베이징(北京) 순이(順義)구 일대의 공장 단지. 지난 2002년 북경현대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도로 이름도 ‘현대로(現代路)’로 지어졌던 이 일대는 한때 새로운 한인 타운이 건설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현재는 가동을 중단한 공장과 빈 부지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북경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매각한 제1공장 부지는 현재 새로운 공장 건설을 위해 철거되고 있었고 정문 옆 건물은 붙어 있던 현대자동차 로고가 흉물스럽게 떨어져 나간 채 리모델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현지 교민은 “중국이 전기차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을 재편해 나가며 기존 휘발유 엔진 자동차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며 “현대자동차가 위축되면서 협력업체들이 대거 도산했고 한국 식당이나 노래방 등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가게도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내 한국 기업가 모임인 한국상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5835개에 이르던 한국인 설립 중국 법인이 사드 갈등 직후인 2019년엔 3567개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한국상회 관계자는 “2020년 이후에는 코로나19로 더 많이 빠져나간 데다 한국 기업임을 공개하는 데 부담을 느낀 기업이 많아 현재는 집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2일 베이징 순이구 북경현대자동차 공장 일대의 도로표지판에 ‘현대로’란 도로명이 새겨져 있다. 한때 번창했던 이곳은 현대자동차의 실적 부진 등으로 이전보다 활기가 많이 줄었다.
22일 베이징 순이구 북경현대자동차 공장 일대의 도로표지판에 ‘현대로’란 도로명이 새겨져 있다. 한때 번창했던 이곳은 현대자동차의 실적 부진 등으로 이전보다 활기가 많이 줄었다.


중국의 산업적 구조 개편도 현지에 진출한 사업가들에게 큰 타격이지만, 현지 사업가와 전문가들은 중국 내에서 반한감정이 커진 게 탈중국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산업 구조 개편은 그에 맞춰 대응해 나갈 수라도 있지만 반한감정에 기반을 둔 견제와 ‘텃세’는 자력으로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 김 씨는 “아내가 남편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차별을 받는 것을 체감한다고 하더라”며 “중국인인 아내도 이 같은 견제를 받는데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 교민들이나 한국 기업인들이 현지 비즈니스에서 받는 불이익은 생각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까지 남아서 버티는 사람들 대다수는 5∼10년간 이뤄지는 부동산 임대 계약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계약이 만료되면 남아 있는 사람의 절반은 귀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중 갈등보다 미·중 갈등이 반한감정 원인=반한감정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최근의 반한감정이 과거와는 다른 원인 때문에 생겼다고 보고 있다. 이전의 갈등과 양국 감정 악화가 동북공정 등 양국 간 문제로 불거졌다면 최근에는 미·중 갈등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 미·중 간의 패권전쟁이 본격화되며 안보적으로 미국과 함께하는 한국은 중국에 껄끄러운 존재고 이것이 반한감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 당국이 ‘미·중 간 무력충돌의 승리’로 꼽는 한국전쟁(중국명 항미원조전쟁)을 최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사회적 현상도 반한감정 강화에 일조하고 있다. 또 다른 현지 교민은 “미·중 갈등이 1∼2년 사이에 끝난다면 버티겠지만 10∼20년을 버티기는 어렵다”며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은 당연히 ‘출구전략’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일현 중국정법대 교수는 “이데올로기 중심보다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통해 미·중 사이에서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외교를 펴야 한다”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서도 미·중 간 협력 구도가 필요한 만큼 한국이 미·중 사이의 중재자 내지 소통 촉진자로 나서지 않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새 정부는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균형 전략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며 “그러나 우리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하는 상황에서 안미경세(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세계와)는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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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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