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셔스
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김수진 옮김│까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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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짠맛·신맛·쓴맛 감별하는
미각수용체 발전시켜 위험 피해
소금 과다섭취시 “너무 짜” 경고

침팬지, 막대기로 개미·꿀 먹고
古인류는 요리 덕에 에너지얻어
더 효율적인 치아·턱 가지게 돼

향신료에 눈뜨면서‘맛의 신세계’
견딜수있는 가장 매운맛에 끌려
목숨 위협하지않는 온순한 자학


“인류 역사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맛과 향미(香味)’를 찾아 나선 투쟁이었다.”

미국 진화생물학자와 인류학자가 함께 쓴 ‘딜리셔스(DELICIOUS)’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미식의 즐거움과 역사를 다룬 책은 많았으나 맛있는 먹거리를 추구하는 인류와 동물의 본성을 진화적 관점에서 접근한 시도는 드물었다. 부부인 저자들은 다양한 실험 결과와 최신 인류학 연구를 토대로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결정하고,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쾌감을 느끼는가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간 진화사 연구에서 간과된 미식의 쾌락을 역사의 주요한 동인(動因)으로 주목하는 ‘맛있는’ 연대기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수억 년에 걸쳐 혀에 있는 ‘미각 수용체’를 발전시켜 왔다. 단맛·짠맛·감칠맛·신맛·쓴맛 등을 감별하는 미각 수용체는 맛있다는 느낌을 통해 어떤 먹이가 더 필요한지 알려주는 한편 불쾌감을 안겨 위험을 피하게 해준다. ‘짠맛 수용체’가 소금 섭취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일정 수준의 나트륨을 문제없이 받아들이지만, 농도가 짙어지면 ‘너무 짜!’라는 경고음을 보내는 식이다. 여러 미각 가운데 반응 촉발에 필요한 최소 농도가 가장 낮은 것은 쓴맛 수용체다. 수렵 채집의 역사에서 쓴맛이 나는 식물 중 독성 물질을 품은 경우가 많았던 탓에 쓴맛 수용체가 유독 ‘민감하게’ 진화한 것이다. 어떤 미각 수용체는 진화 과정에서 ‘파괴’되기도 한다. 고양이, 점박이하이에나, 작은발톱수달은 과거엔 단맛 수용체를 갖고 있었으나 과즙을 빠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다 생존이 위협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단맛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우간다의 한 숲에서 침팬지가 무화과를 먹고 있는 모습.  까치 제공
우간다의 한 숲에서 침팬지가 무화과를 먹고 있는 모습. 까치 제공

미식의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맛에 이끌린 동물은 ‘도구’의 발견을 통해 적은 노력으로 더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약 600만 년 전 같은 조상에서 분화된 침팬지는 일찍부터 막대기로 개미와 꿀을 먹고 수초를 채집했다. 딱딱한 견과류를 돌로 깨 먹기도 했다. 인류는 단순한 도구 활용을 넘어 가공으로 음식의 맛과 성분을 변화시키는 요리법을 터득했다. 꿀벌에 연기를 쏘아 벌침에 맞지 않고도 많은 양의 꿀을 얻었고, 불을 통해 열량을 더 쉽게 흡수했으며, 발효 기법으로 몸에 해로운 균을 죽여 오랜 기간 먹거리를 저장했다. 최초의 고인류인 호모에렉투스는 요리 덕분에 두뇌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했고, 더 작으면서도 효율적인 치아와 턱을 가지게 됐다. 향미를 알게 되면서 탄생한 요리법이 곧 중대한 진화적 혁신이었던 셈이다.

물론 인류가 실질적 이점만을 고려해 요리법을 발전시키고 전수한 것은 아니다. 불에 익힌 고기가, 발효시킨 열매와 뿌리가 날것보다 더 맛있었기 때문이다. ‘가성비’만을 따져 쉽게 잡을 수 있는 고기를 사냥하는 대신, 힘겨운 노동이 뒤따라도 호시탐탐 맛 좋은 먹거리를 노리는 현생 수렵 채집인의 삶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류의 ‘향미 사냥’은 여러 거대 동물의 멸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매머드 발, 모아새, 털코뿔소 등은 한때 조상들이 사랑했으나 지금은 망각 속으로 사라진 향미의 상징이다.

뒤이어 나온 향신료는 인류 미식사에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이전까진 자르고 빻아도 빵은 빵이고, 불에 익혀도 닭은 닭이었으나 향신료를 첨가하면서 새로운 맛의 세계가 열렸다. 다른 요리법에 비해 향신료 개발은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다. 독일 북부의 한 유적지에서는 약 66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수렵 채집인들이 고기와 전분에 마늘냉이 향신료를 넣은 스튜를 먹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흥미로운 것은 고추·후추·레몬·마늘·양파 등 오늘날 사용하는 모든 향신료는 쓰거나 강한 냄새가 나는 식물 부위에서 얻는다는 사실이다. 향신료를 즐기는 이들은 쓴맛을 피하라는 미각 수용체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와 관련해 고추를 넣은 크래커를 먹게 한 실험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각자 견딜 수 있는 가장 매운맛’이 제일 맛있다고 답했다. 강렬한 향신료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위험을 피하는 순간의 황홀감을 느끼는 것이다.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 향신료는 ‘온순한 자학’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중세 시대 맥주에 신맛이 나는 홉을 첨가하고, 성 베네딕트 수도원 신부들이 금욕적 생활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장기간 노력을 통해 ‘세척 외피 치즈’를 개발한 것은 ‘맛에 진심’인 조상의 DNA를 물려받은 사례들이다.

흔히 침팬지들은 서로 털 손질을 해줄 때 신뢰와 유대 관계를 증진하는 옥시토신을 분비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 연구진은 침팬지가 어렵게 구한 먹이를 친구와 나눌 때 훨씬 더 많은 옥시토신이 생성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함께 먹으면 음식 맛이 더 좋고 즐거워진다는 일상적 감각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호모사피엔스는 ‘지혜가 있는(sapiens) 사람(Homo)’을 의미하지만, 사피엔스는 원래 ‘맛을 보다’는 뜻이었다가 나중에 ‘식견이 있다’는 의미로 바뀐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언어가 세상을 규정하는 중요한 틀이라면, 인류는 태초부터 맛을 갈구하는 ‘먹성’ 좋은 동물이었던 셈이다. 오늘은 또 무엇을 먹고 마실까. 고단한 일상에 지친 각자에게 화려한 진수성찬을 선물하자. 사랑하는 이와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면, 내일 또 어떤 일이 닥쳐도 가뿐히 이겨낼 힘이 솟을 테니. 333쪽, 1만8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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