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올 상반기 14조3000억 원의 ‘역대급’ 적자를 냈다. 한전 설립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지난 한 해 적자액(5조8600억 원)의 2.4배다. 연간 기준으로는 손실액이 30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재무위험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가운데 부채 규모는 삼성전자·현대차를 제치고 국내 1위를 기록했다. 연말이면 회사채 발행 등 ‘빚 돌려막기’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된다. 23일 기준 한전의 회사채 발행 누적액이 58조8100억 원에 달해서다. ‘한국전력공사법’상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는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45조9000억 원)의 2배를 초과할 수 없다.
초우량 공기업에서 졸지에 자본잠식(적자 누적으로 잉여금이 마이너스가 되며 자본 총계가 납입 자본금보다 적은 상태)을 걱정해야 할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 부실의 핵심 원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촉발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이다. 한전의 상반기 결산(발전자회사 실적 포함 연결기준)을 보면 전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0% 늘었다. 정부가 미루고 미루던 전력량요금과 기후환경요금을 4월에야 ㎾h당 총 6.9원으로 찔끔 올리며 전기 판매수익은 같은 기간 2조5015억 원(9.3%) 증가했다.
하지만 수익 증가가 영업비용 증가 폭을 밑돌다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적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 원료인 LNG나 석탄값이 크게 뛰며 연료비·전력구입비는 같은 기간 16조5100억 원이나 불었다. 비용이 증가하면 전기요금도 올리는 ‘연료비 연동제’가 2021년 도입됐지만, 선거를 앞둔 시점 문재인 정부가 ‘유보조항’을 들어 요금 인상을 억누른 탓에 유명무실해졌다.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한 배경이다. 올 상반기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올 때 기준이 되는 전력도매가격(SMP)은 ㎾h당 169.3원이었는데 판매단가는 110.4원에 그쳤다. 1㎾h를 팔 때마다 60원 가까운 손해를 본 셈이다. 저렴한 발전원인 원전을 줄이는 탈(脫)원전 정책과 태양광·풍력 등 원전 단가의 2∼3배에 이르는 신재생에너지의 무분별한 확대 기조 역시 재무 악화를 부채질했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원전 이용률을 80%로 유지했다면 11조 원이 절감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이행 비율(RPS) 상향으로 한전이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조금은 늘었다.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백지화 등 에너지 정책 정상화는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수 있어도 판매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전기요금 체계 개편 없이는 유가 급등기 대규모 적자 되풀이가 불가피하다. ‘밑지는 장사’를 감당해낼 회사는 없다. 더군다나 나라의 전기 공급을 전담하는 공기업이다. 한전 부실은 결국 전력 생태계 붕괴로 귀결되며 국민, 특히 미래 세대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미 원가를 반영하려면 전기요금을 50% 올려야 한다고 한다. 요금 정상화 논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정치 논리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도록 독립적·자율적 요금 결정을 위한 별도의 기관 설치도 서둘러야 한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