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18) 홍수와 치수

변신 이야기
변신 이야기


죄로 세상 더럽힌 인간에게 분노
神, 땅 정화하기 위해 폭우 내려
경건하고 선량한 사람 살아남아
지도자 지금처럼 손놓고 있으면
이상기후發 참사 언제든 닥칠것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지하철 역사 주변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어 수많은 차량을 집어삼켰고, ‘기생충’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물난리로 반지하 거주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실제로 일가족 세 명이 생명을 잃는 참사도 벌어졌다. 21세기 과학의 시대, 고도성장을 이루며 선진국 대열에 선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려운 사건이다.

홍수의 참사를 대비하지도 못하고 적절한 뒷수습도 전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서울시와 정부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번 폭우의 규모가 기록적이라고는 해도, 비슷한 규모의 수재가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은 정부가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권력을 잡는 데에만 급급하고, 정작 권력을 잡았을 때는 자신들을 뽑아 권력을 맡기고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국민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인가, 먹먹한 가슴에 의심이 솟구친다. 그런 게 아니라면, 너무 무능한 것 아닌가? 정부만 탓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 아무리 유능하고 성실한 정부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오죽하면 고대인들, 특히 지중해 지역의 사람들은 홍수를 신의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상상했을까?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가 대표적이다. 인간을 만든 신은 그 인간들이 죄로 세상을 더럽히는 모습을 보고, 인간 창조를 후회했다. 결국 그의 뜻에 맞게 살던 노아와 그 가족들만 남기고 모든 인간을 쓸어버렸다. 비슷한 이야기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도 나온다. 윱피테르(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땅을 보며 탄식했다. 인간들 때문이었다. 윱피테르는 직접 세상을 살펴보려고 그리스 아르카디아 땅의 뤼카온 왕을 찾아갔다. 뤼카온은 낯선 손님이 최고의 신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를 시험하고자 했다. 그것은 선량한 호기심이 아니라, 오만한 불경이었다. 인질을 죽여 음식을 만들어 내놓고 그 반응을 보려고 했다. 그걸 윱피테르가 모를 리 없었다. 진노한 그는 뤼카온을 늑대로 만들었다.

윱피테르는 남풍을 풀어놓아 야수처럼 날뛰게 만들었다. 검은 안개로 얼굴을 가린 남풍이 물이 줄줄 듣는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에 널려 있는 구름을 꽉꽉 짜기 시작하자, 엄청난 소음과 함께 비가 쏟아져 내렸다. 무지개의 신 이리스는 구름이 물기를 잃으면 계속 물을 대줬고, 바다의 신 넵투누스(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는 쓰나미 같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땅을 덮었다. 강물의 신들은 거센 물결을 일으키며 강둑을 무너뜨렸고, 샘은 분수처럼 물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땅과 바다의 경계가 지워져 온통 물로 뒤덮였다. 높은 곳을 향해 계속 뛰는 인간들의 속도는 세상을 덮는 물의 속도를 이길 수가 없었다. 모두가 물에 잠겨 죽었을 때,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이 살아남았다. 데우칼리온과 퓌르라, 그들은 신을 공경하며 죄를 짓지 않고 살던 정의로운 사람들이었다.

두 이야기 속에서 폭우는 죄로 더럽혀진 인간에게 분노한 신이 땅을 정화하려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재앙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들의 특징은 경건함과 선량함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믿을 순 없다. 수해를 입은 지역과 재산,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그들의 죗값을 치른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리석고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옛날이야기는 그 우화적 껍질을 벗고 우리에게 묻는다. ‘이번에 당한 수해에 우리의 잘못은 없는가?’ 옛이야기 속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욕망에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재앙을 당하듯,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는 지혜롭고 현명한 지도자가 정의와 용기를 가지고 국민의 삶을 헤아리며, 탁월한 능력과 성실한 노력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자연의 재해는 언제든 격노한 신의 재앙처럼 우리에게 닥칠 것이다. 그래서 옛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 더군다나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이상기후가 이번 같은 참사를 훨씬 더 자주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으니 말이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