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시간이란 뜻을 가진 ‘디 차이트’는 1946년 창간된 독일의 중도·사회민주주의 성향 주간 신문이다. 주간으로 발행되지만 매거진 대신 신문(newspaper)으로 불리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닮은꼴이다. 1843년 창간된 이코노미스트는 영어로 발행되는 덕분에 글로벌 정론지로 자리 잡았고, 프린트 버전 기준 발행 부수는 90만 부를 웃돈다. 디 차이트는 독일어 신문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매주 50만 부가 발행될 정도로 유럽의 지식사회에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

지난 22일 92세를 일기로 타계한 디 차이트의 원로 저널리스트 테오 좀머 추모 열기가 뜨겁다. 독일 언론들은 좀머가 19세 때인 1949년 지역신문 렘스 차이퉁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을 들어 “서독(1949∼1990)과 함께 출발한 언론인”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1958년 디 차이트에 합류한 뒤 유럽의 외교·안보에 관해 기사를 쓰며 외교장관 한스디트리히 겐셔, 총리 헬무트 슈미트 등과 교류해 “전후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저널리스트”로 통했다. 좀머는 디 차이트에서 기자·편집장(1973∼1992)·공동발행인(1993∼2000)을 거쳐 대기자로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논평을 썼다. 총 64년을 디 차이트에서 보내 좀머 스스로 “디 차이트가 내 인생”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좀머는 독일과 닮은 분단국 한국에 대한 애정도 깊어 한·독포럼 초대 공동의장(2002∼2008)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는 독일 통일 경험을 한국에 전해준 그의 공로를 기려 2008년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여했다. 그와 오래 교류해온 손선홍 전 외교부 본부 대사는 SNS에 “좀머는 1960년대 초 첫 방문 이후 50여 차례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좀머 타계 후 디 차이트는 성명에서 “비범한 판단력과 열정으로 디 차이트를 자유롭고 논쟁적인 신문으로 키운 위대한 저널리스트”라고 추모했다. 좀머는 한 인터뷰에서 “독일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그러할 것”이라고 했다. 또, 통일을 위해선 역사적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기민함과 주변국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뛰어난 외교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말만 앞세우는 통일론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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