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사람은 패배자로 비치지만, 그들이 진정한 승리자” ‘생존 중 퇴위’ 첼레스티노 5세 옹호하며 단테 반박 베네딕토 16세 퇴임 4년 전 라퀼라 방문
프란치스토 교황이 28일 라퀼라에서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도시 라퀼라(L’Aquila)를 방문했다. 라퀼라는 스스로 직에서 물러난 첫 교황인 첼레스티노 5세(1215∼1296)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700년 만에 생존 중 퇴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임 발표 4년 전 라퀼라를 방문한 바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퇴임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도시 광장에서 수천 명이 운집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는 겸손한 사람이 약하고 패배자로 비치지만, 실제 오직 그들만이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그의 뜻을 알고 있기에 진정한 승리자”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테가 ‘신곡’에서 첼레스티노 5세의 퇴임을 ‘대거부’라고 칭하며 지옥문에 배치하고 조롱한 것을 언급하며 “권력을 포기함으로써 겸손의 힘을 보여줬다”고 반박했다. 그는 “어떤 권력의 논리도 첼레스티노 5세를 감금하거나 관리할 수 없다”고 설교했다.
첼레스티노 5세는 1294년 즉위 5개월 만에 사임해 ‘생존 중 퇴위’라는 첫 사례를 남겼다.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라퀼라를 방문했고, 2013년 건강을 이유로 교황 직무를 내려놓았다. 교황청이 지난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라퀼라 방문 계획을 발표했을 때 사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졌다. 교황은 85세의 고령인데다가 올해 초부터 오른쪽 무릎 상태가 나빠져서 자주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7월 “(사임의) 문은 열려있다. 일반적인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교황청은 사임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이날 교황이 첼레스티노 5세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사임론은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 라퀼라에 있는 산타 마리아 디 콜레마조 성당의 성문을 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새 추기명 20을 대서 서임했다. 무더운 휴가철인 8월에 추기경 서임식이 열린 것은 1807년 이후 처음이다. 이중 16명은 콘클라베(Conclave·교황 선출 회의) 투표권을 가진 만 80세 미만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콘클라베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 중 약 60%가 현 교황이 직접 임명한 인물로 구성된다”고 지적하면서 “오는 여름 예정된 일부 일정은 교황의 조기 사임설에 대한 추측을 부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새 교황을 선출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년에 새 추기경을 임명해 자신의 개혁을 이어나갈 후계 구도를 완전히 마련한 뒤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