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른의 나이 마흔다섯이었다. 늦게 자손을 얻기 시작해 일곱 살 맏이부터 그해 태어난 아이까지 꽃 같은 당신의 혈육 5남매와 젊은 아내를 남기고 그 어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05년 11월 30일 새벽의 일이다.
내게는 증조할아버지이신 충정공 민영환의 이야기다.
그분의 일생에 있어 그 시기는 가정적으로는 가장 행복한 때였다. 대를 잇고 조상의 제사를 모실 자손이 없어 근심하던 그에게 사십이 가까운 나이에 첫아들이 태어나고 그 뒤로 넷이 더 태어나 세 아들과 두 딸, 다섯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그러나 나라가 걱정이었다. 일본은 청국과 러시아라는 대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이기고 이제 조선을 일본에 병합하려 하니, 나라는 이미 물이 들어온 배처럼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17살에 조정에 들어가 오늘까지 모든 요직을 두루 거치며 임금을 잘못 보필한 자신의 잘못이 크다. 서양을 돌아본 후 나라의 개혁을 그렇게 외쳤건만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힘도 방법도 없고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못할 지경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백성을 흔들어 깨우고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위해 결국 당신의 목숨을 바칠 결심을 한 것이다.
어찌 차마 당신의 몸에 칼을 댈 생각을 하랴! 더구나 임오군란에서 병졸들의 칼에 맞아 시신조차 찾기 어려웠던 아버지와 그렇게 남편을 잃고 오로지 아들의 안위만을 걱정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찌 아들인 당신의 참혹한 시신을 다시 보여드릴 불효를 저지른단 말인가. 그 어른의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힘들고 두려운 결정이었으리라. 종일품 품계를 가지고도 친일파들에게 밀려 마지막 관직은 지금으로 말하면 경호실장쯤 되는 ‘시종무관장’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나셨다. 말을 타고 긴 칼을 차고 다니셨어도 그분은 칼을 써본 분이 아니다. 그런 분이 단도로 당신의 목을 여러 번 찔러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신 것이다. 참으로 참혹한 죽음이었다. 그분은 돌아가시며 6장의 유서를 남겼다. 하나는 이천만 동포에게 고하는 것이고 다른 5장은 청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공사관에 남기는 부탁의 유서다.
당신이 흘린 피로, 이천만 동포가 각성하고 분발해 학문에 힘쓰고, 굳건한 뜻으로 나라의 자주독립을 되찾으면 당신은 구천지하에서도 웃으며 박수를 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외국 공사들에게는 각기 자국 정부와 국민에게 일본의 조선 침탈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려 조선의 독립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살 수만 있다면 살고 싶었으리라. 당신의 죽음이 과연 값진 죽음이 되어 나라의 독립에 작은 불씨라도 될 것인가. 그분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스스로를 불사를 결심했을 것이다.
칼을 가는 그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가솔들에게 당신의 참혹할 시신을 보이지 않기 위해 자결의 장소도 당신을 수발하던 청지기 이완식의 집을 택했다. 가족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죽음의 시간과 장소를 택하신 그분을 생각하면 존경에 앞서 인간적 연민이 앞선다. 그분은 ‘자결’을 마음에 품고 다니며 얼마나 두렵고 고독하고 외로웠을까?
한 인간에게 있어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행복,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존경, 그로서 얻어지는 위엄과 품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분은 자신이 가진 그 모든 것을 장담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포기하고 비극적 죽음을 택했다. 한 인간의 평안과 사랑, 행복이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할수록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을 던져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연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정신은 그가 흘린 핏방울에서 푸른 대나무로 현신했고 그래서 그분의 죽음이 백 년을 넘은 오늘까지 우리는 그분을 기리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리저리 떠돌던 동상이 그분 생전의 활동무대였던 충정로 사거리 교통섬으로 다시 모셔졌다. 그분의 얼이 후대에 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증손녀 소설가 민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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