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원전설비 수출 계약 낭보가 있었다. 원전의 핵심 설비인 원자로 건물과 그 내부에 설치되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같은 주기기 공급이 아닌 터빈 건물과 펌프·밸브 같은 보조기기에 대한 수주 계약이라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다. 그러나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가 절차 준수 원칙에 발목을 잡혀 아직도 실질적인 일감이 없는 원전 산업계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희소식이다. 어려운 원전 산업계를 도울 방안을 마련해 보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마련된 선발주 금액이 올해 1000억 원 남짓한 상황에서 향후 수년간 집행될 3조 원은 상당한 규모다.
총 공사비가 290억 달러(약 40조 원)인 이집트 원전 사업은 러시아 국영 원자력 공사인 로사톰이 최신형 원전(VVER-1200) 4기를 이집트 엘다바 지역에 건설하는 것이다. 이 사업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참여는 2016년 6월부터 모색됐다. 당시 한수원의 글로벌 전략실에서는 국내 원전 기자재 수출 진작의 일환으로 로사톰과 접촉을 시작했다. 2017년 1월에는 한수원에 해외사업본부가 설립돼 로사톰과의 긴 협상이 시작됐다. 로사톰은 우리나라 원전 산업계가 온전한 독자 공급망을 갖추고 있고, 사막 지역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지역에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가동한 점을 높이 평가해 한수원에 하청을 주게 된 것이다.
사막 지역에는 기온뿐 아니라 연안 바닷물 온도가 높고 모래가 많이 날린다. 사막 지역에 원전을 건설할 때는 이러한 자연환경에 맞게 대처 설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짓던 ‘APR1400’ 원전의 상세 설계를 일부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고, 변경된 설계에 따라 추가 기자재를 조달해 설치해야 한다. 바라카 원전의 경우 설계 변경이 1만 건이 훨씬 넘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사막의 불리한 여건을 극복한 우리나라의 우수한 시공 능력을 높이 사서 자국 원전 건설 참여를 원한다. 우리나라의 높은 원전 가격경쟁력과 사막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사우디 원전 수주에 참여한 러시아·프랑스·중국·한국 4개국 중 우리나라가 수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사우디는 이란과의 적대 관계 때문에 핵확산금지 문제에 걸려 있다. 우리가 미국을 무시하고 독자 수주에 나서는 것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유리하지 않다. 사우디 원전 수출은 미국과 긴밀하게 정치·외교적으로 협력하며 추진해야 한다.
근래 체코,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에서는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위해 서방 원전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중 폴란드 원전이 가장 먼저인 2026년에 착공하기로 돼 있다. 폴란드에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진작부터 원전 수주 활동을 펼쳐 시장을 선점한 상태다. 하지만 폴란드에 전투기를 비롯한 국산 무기가 대거 수출된 최근 상황이 우리 원자력계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폴란드와 사우디 원전 수출에 양국이 협조해 윈윈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향후 탄소중립 요구에 따라 화력발전에 대한 탄소세 부과가 본격화하면 원전이 경쟁력을 갖출 서방국가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향후 확대될 게 분명한 세계 원전시장에서 이번 이집트 사업이 본격 원전 수출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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