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르바초프, 91세로 별세
54세때 최연소 서기장 올라
독일 통일·군비축소 등 기여
1990년 노벨평화상 수상도
노태우와 정상회담, 수교합의
韓북방외교 초석닦는데 역할
냉전 체제 종식과 소련 붕괴, 동구권 공산주의 몰락 등 20세기 역사 격변의 중심에 섰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30일 사망했다. 향년 91세.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앞세워 내부적으론 무능하고 부패한 공산주의 세력을 청산해 민주화를 이뤄냈고, 대외적으론 극으로 치닫던 동서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의 길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1990년 6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러 수교에 합의하며 한국 외교사에도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 외신은 이날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최근까지 모스크바 외곽 전원주택인 다차에 머물며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1931년 3월 소련 스타브로폴 프리볼노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모스크바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52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 54세 나이로 최연소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개혁과 개방 노선을 주창하며 대변혁을 몰고 왔다.
대외적으로는 평화 정책을 펼쳤다. 집권하자마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난 그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체결하며 전 세계에 드리운 핵 위협을 해소했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자 이를 무력 진압하지 않고 되려 “이들 국가 변화에 간섭하지 않겠다”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도 이를 사실상 용인했다. 특히 그해 12월 조지 H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몰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계속된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해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군비 축소와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1988년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도 내렸다.
하지만 1990년 소련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극심한 경제 침체와 내부 반발 등에 시달렸고, 결국 1991년 8월 크름반도(크림반도)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던 중 쿠데타를 일으킨 보수파에 연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쿠데타는 진압했지만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91년 12월 소련 해체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재도 러시아 일각에선 “강대국 소련의 패망을 몰고 온 장본인”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한국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90년 6월 4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수교 원칙에 합의하며 한국이 북방외교 초석을 닦는 데 이바지했다.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 이외 공식 사절단을 전원 철수하겠다”고 압박했지만 정상회담에 응했고, 그해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의 역사적인 수교를 이뤄냈다. 앞서 1988 서울올림픽엔 788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해 냉전 종식 의지를 보였다. 이후에도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도 추모 메시지를 보내는 등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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