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5억 배상판정 ‘선방’
론스타 주가조작 유죄 판결
배상금 감액 요인으로 반영
‘국세청 자의적 과세’는 기각
10년 다툼에 증거만 1546건
당시 금융당국 책임론 재부상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중재판정부는 31일 미국계 사모펀드(PEF)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 사건 판정 결과 우리 정부에 2억1650만 달러(약 2925억 원)를 배상하라고 밝혔다.
애초 론스타가 청구한 소송 가액인 46억7950만 달러의 4.6%에 불과한데다 론스타가 제기한 3가지 쟁점 중 2가지가 기각돼 우리 정부가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자를 포함해 30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 배상해야 한다는 점과 그간 투입된 소송 비용 등을 고려하면 정부도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법무부 등에 따르면, 이번 론스타 국제 소송의 쟁점은 크게 3가지였다. △론스타가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체결한 매각 합의에 대한 심사를 금융 당국이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는지 △우리 정부가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협상 과정에 매매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했는지 △국세청이 한국·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위반해 자의적·차별적 과세를 했는지 등이다. 아직 판정문 전체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법무부는 이 중 두 번째 쟁점에서만 한국 정부의 책임이 일부 인용됐고 나머지 두 부분은 전부 기각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당시 론스타가 하나은행 계약서 대비 약 7000억 원을 깎아서 팔았는데, 이 중 38%가 인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첫 번째 쟁점과 관련해서는 매각 당시 론스타가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과실상계 사유로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파악됐다. 판정 판결문 다수·소수 의견 모두에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유죄 판결에 따라 론스타 과실이 인정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검찰이 론스타가 하나은행 인수를 위해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했다는 정황을 찾아내 수사에 착수했고, 해당 수사가 진행 중이기에 매각 심사 지연은 불가피했다는 금융 당국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이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이다.
무엇보다 배상 금액이 예상 대비 크게 낮아진 점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론스타가 2012년 12월 ICSID에 소송을 제기한 후 현재까지 정부와 론스타 양측은 증거 자료만 1546건, 또 증인·전문가 진술서 95건 등을 제출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우리 정부는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외교부·법무부·금융위·국세청이 참여하는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소송 대응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애초에 6조 원이라는 소송 가액 자체가 크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어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 이제의 염승열 변호사는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6조 원 자체가 사모펀드 측의 일방적 손해 주장이었기에 정부가 잘 막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도 “소송 대응 자체는 잘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소송 기간을 늦춰 부대 비용을 발생시킨 것은 문제”라고 짚었다.
이번 ISDS는 2003년 론스타가 1조3834억 원에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사들인 뒤 2006년부터 매각을 시도하면서 불거졌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 중 최대 규모였던 데다 다수의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돼 있어 파장이 클 전망이다.
장서우·염유섭·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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