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후 10년 지나 이 검사에게 연락와
수소문해 연락처 구해 안부 유족 물어
공청회 때 유족에게 검사 자리 양보키도
“그날 사고 이후, 유일하게 연락 온 대한민국 공무원은 이원석(검찰총장 후보자) 검사가 유일했어요.”
지난 2002년 4월 15일 경남 김해시 지내동 돗대산에서 발생한 중국 국제항공공사 민항기 추락사고 희생자의 유족인 구대환 당시 김해 중국항공기 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대해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친척을 잃은 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을 때 이 검사만큼은 신뢰할 수 있었다”며 특별한 인연을 전해왔다.
구 위원장은 31일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이 후보자가 사고 이후 10년 정도 지난 2012년께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며 “(이 후보자는) 사고 수습 이후 연락 온 처음이자 유일한 공무원이었다. 당시 기자들한테 수소문해서 제 연락처를 알아내 안부와 사고 이후 근황 등을 물었다”고 밝혔다.
166여 명의 탑승자 중 129명이 숨진 최악의 항공 참사로 기록되는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당시 이 후보자는 부산지검 검사로 관련 수사를 맡았다. 구 위원장과 이 후보자는 이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는 “사고 수습 이후 정부 관계자한테 온 첫 전화였는데 이런저런 안부를 묻길래, ‘세상에 이런 공무원도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고 10년이 지나서도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탑을 들려 참배를 하고 왔다는 얘기를 듣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고 했다.
구 위원장은 20년이 지났지만 사고 직후 이 후보자와의 인연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아직도 이 후보자와 기억이 생생하죠. 사고 이후 진상조사를 위해 공청회가 열린 날이었어요. 공청회에는 우리 정부 관계자와 보잉사 및 중국 항공사 관계자, 공군 관계자, 대학 교수 등이 모였어요. 분노가 극에 달했던 유족들은 공청회 맨 뒷자리에 배정돼 있었어요. 그때 이 후보자가 저에게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자신과 자리를 바꾸자고 하더라고요. 당시 이 후보자는 수사 검사로 맨 앞자리에 자리가 있었거든요. 자신보다는 유족 대표자가 앞에서 듣는 게 맞을 거 같다면서요.”
구 위원장은 이 후보자가 중국 여객기 기장에 대한 송환 문제 등 수사 과정에서도 유족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중국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사고 여객기 기장을 본국에 보내달라는 뜻을 전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장 수사를 맡고 있던 이 검사는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고기 기장 송환을 요청하려면 중국 쪽이 먼저 유족들과 합의에 성실히 나서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고 조사 결과 조종사 과실이 주요 원인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구 위원장은 “불의의 사고 직후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유족 대부분이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였지만 이 후보자에 대해선 예외였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 후보자가 당시처럼 검찰총장이 되면 국민을 섬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정선 기자
수소문해 연락처 구해 안부 유족 물어
공청회 때 유족에게 검사 자리 양보키도
“그날 사고 이후, 유일하게 연락 온 대한민국 공무원은 이원석(검찰총장 후보자) 검사가 유일했어요.”
지난 2002년 4월 15일 경남 김해시 지내동 돗대산에서 발생한 중국 국제항공공사 민항기 추락사고 희생자의 유족인 구대환 당시 김해 중국항공기 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대해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친척을 잃은 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을 때 이 검사만큼은 신뢰할 수 있었다”며 특별한 인연을 전해왔다.
구 위원장은 31일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이 후보자가 사고 이후 10년 정도 지난 2012년께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며 “(이 후보자는) 사고 수습 이후 연락 온 처음이자 유일한 공무원이었다. 당시 기자들한테 수소문해서 제 연락처를 알아내 안부와 사고 이후 근황 등을 물었다”고 밝혔다.
166여 명의 탑승자 중 129명이 숨진 최악의 항공 참사로 기록되는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당시 이 후보자는 부산지검 검사로 관련 수사를 맡았다. 구 위원장과 이 후보자는 이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는 “사고 수습 이후 정부 관계자한테 온 첫 전화였는데 이런저런 안부를 묻길래, ‘세상에 이런 공무원도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고 10년이 지나서도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탑을 들려 참배를 하고 왔다는 얘기를 듣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고 했다.
구 위원장은 20년이 지났지만 사고 직후 이 후보자와의 인연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아직도 이 후보자와 기억이 생생하죠. 사고 이후 진상조사를 위해 공청회가 열린 날이었어요. 공청회에는 우리 정부 관계자와 보잉사 및 중국 항공사 관계자, 공군 관계자, 대학 교수 등이 모였어요. 분노가 극에 달했던 유족들은 공청회 맨 뒷자리에 배정돼 있었어요. 그때 이 후보자가 저에게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자신과 자리를 바꾸자고 하더라고요. 당시 이 후보자는 수사 검사로 맨 앞자리에 자리가 있었거든요. 자신보다는 유족 대표자가 앞에서 듣는 게 맞을 거 같다면서요.”
구 위원장은 이 후보자가 중국 여객기 기장에 대한 송환 문제 등 수사 과정에서도 유족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중국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사고 여객기 기장을 본국에 보내달라는 뜻을 전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장 수사를 맡고 있던 이 검사는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고기 기장 송환을 요청하려면 중국 쪽이 먼저 유족들과 합의에 성실히 나서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고 조사 결과 조종사 과실이 주요 원인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구 위원장은 “불의의 사고 직후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유족 대부분이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였지만 이 후보자에 대해선 예외였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 후보자가 당시처럼 검찰총장이 되면 국민을 섬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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