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독립운동가’ 하와이 한인 지도자 안원규·정원명 선생

6·25 전쟁 당시 경북 영덕에서 장사상륙작전 임무를 수행한 후 좌초한 문산호. 해군 제공
6·25 전쟁 당시 경북 영덕에서 장사상륙작전 임무를 수행한 후 좌초한 문산호. 해군 제공


국가보훈처는 1950년 9월 경북 영덕 장사동 해안에서 태풍 속에서 장사상륙작전 임무를 수행한 전차상륙함 ‘문산호’를 ‘9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문산호는 6·25전쟁 개전 당일 해군 묵호경비부에 징발돼 묵호와 포항 간 철수 및 복귀 병력을 수송했으며, 그해 7월 27일에는 여수철수작전에 참가해 백두산함의 엄호 아래 이응준 소장의 병력 600여 명과 차량 30여 대를 진해로 수송했다. 같은해 9월 14일 문산호는 경북 영덕의 장사동 해안에 상륙할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 수송에 참여했다. 841명을 태운 문산호는 부산항을 떠나 미군 함정의 안내로 15일 새벽 5시 장사동 근해에 도달했다. 문산호는 태풍으로 인한 기상 악화와 적의 집중 공격에도 작전 임무를 수행했으나 심한 풍랑으로 해안에 좌초했다. 그 과정에서 선장 황재중과 선원 10명이 전사했다. 황재중 선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10명의 선원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좌초 후 거의 47년이 지난 1997년 3월 6일 장사동 해안에서 해병수색대원에 의해 바닷속에 묻힌 문산호가 발견됐다. 2020년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으로 탈바꿈했다. 문산호는 본래 미국 인디애나주 제퍼슨빌 선박회사가 설계한 전차상륙함이었다.



2022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하와이 이민 독립운동가 안원규(왼쪽), 정원명(오른쪽) 지사. 국가보훈처 제공
2022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하와이 이민 독립운동가 안원규(왼쪽), 정원명(오른쪽) 지사. 국가보훈처 제공


보훈처는 하와이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 창립에 기여하고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안원규·정원명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하와이에서 창립된 항일민족단체다. 교육사업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자금을 모아 독립운동을 후원했으며 하와이 한인의 독립운동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한인합성신보도 발간했다.

안원규 선생은 1903년 두 번째 하와이행 이민 배인 캡틱호로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안 선생은 한인합성협회 부회장에 선임돼 동포 교육과 애로 해소에 힘썼다. 1930년대 초반 대한인국민회가 와해한 후 1933년 조국독립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하와이 대한인국민회’가 다시 조직됐고, 선생은 1935년 입법기관인 참의부의 참의원으로 활동했다. 1944년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위원장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임시정부와 미국 정부의 가교 구실을 했으며 한인사회 단결에 헌신했다. 선생은 1947년 하와이 호놀룰루 퀸병원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 유해는 다이야몬드헤드 기념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정원명 선생은 기독교학교에서 공부하고 미국인 선교사의 요리사로 일하며 영어를 익혔다. 1907년 한인합성협회가 창립되자 총회장에 선임된 선생은 대한인국민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하와이지방총회 대표원 등을 역임하면서 하와이 한인사회 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소식에 1925년 조직된 ‘임시정부후원회’ 회장으로 선출돼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했다. 1936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대의원회의에서 참의원과 역사편찬위원으로 활동했고, 1937년 임시정부의 군사무장투쟁을 후원하기 위한 ‘찬무회’에도 회원으로 동참했다. 1942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별세한 선생은 오아후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정부는 안원규 선생에게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정원명 선생에게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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