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이 쌀로 지은 밥이라면, 시(詩)는 쌀로 빚은 술이다.”

중국 청나라 문인 오교(吳橋)의 말입니다. 쌀의 형태를 보존한 밥과 달리 새로운 모습과 성질로 변한 술처럼 시 역시 평범한 단어의 조합으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전하다는 것이지요. 술은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이 아니지만, 어찌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산문처럼 흘러가는 일상에 반짝이는 시적 흥취가 절실하기에 우리는 술에 취하고, 시를 지어 노래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번역하고 해설한 ‘주시(酒詩) 일백수’(돌베개)는 제목 그대로 술(酒)에 관한 시 100여 편을 모았습니다. 책장을 열면 먼 옛날 한국과 중국 시인들이 쓴 ‘술 향기 진동하는 시’가 펼쳐집니다. 정성스러운 해설과 함께 시편을 읽어 나가니 ‘술 한잔 걸치고 시 한 수 읊은’ 시인들의 유유자적한 삶이 눈에 선합니다. 고려 시대 문장가 이규보는 ‘술 없는 시 짓는 일 멈춰야 하고/ 시 없는 술 마시는 일 물리쳐야 해’라고까지 노래했네요. ‘깨어 있는 사람은 괴로움이 많았고/ 취해 있는 사람은 즐거움이 많았네’라는 중국 시인 백거이의 구절은 어떻고요.

우리가 그렇듯 시인들도 때로는 술로 시름을 달랬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평소엔 절제 있는 삶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데, 종교를 이유로 좌천됐을 땐 괴로움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긴긴날 하루 종일 한 동이 술에/ (…)미친 듯 취해 있네/ (…) 둘이 함께 십만 잔을 마셔 보지 않겠는가.’(취가행)

몸이 버텨내지 못해 ‘이제는 술을 끊노라’고 다짐하는 모습도 우리와 판박이입니다. ‘세 잔이면 그걸로 족하지/ 이를 넘으면 술에 빠져 버려서/ (…) 자기 몸을 상하게 한다오/ (…) 이 길을 어찌 그대로 답습하리오.’(조선 중기 문신 이행, ‘술 끊기를 권하며 공석에게 주다’) 이렇게 주시를 모아놓고 보니 정말이지 술은 인간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가장 오랜 벗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농담 같은 얘기지만 책엔 ‘술자리 건배사’로 써먹으면 좋을 구절도 가득합니다. 사실 폭탄주를 들고 재치와 유머를 담아 날리는 건배사야말로 ‘술자리에서 쓰는 시’가 아니겠습니까. 흐뭇하게 책장을 넘겼지만 술에 취해 ‘술술’ 글 쓰는 경지는 감히 꿈꾸지 못합니다. 아직은 기사를 마감하고 술병을 따는 게 루틴이자 낙(樂)입니다. 북리뷰 마감을 마치고, 오늘 저녁에도 술자리에 갑니다. 어떤 건배사로 좌중에 감동(?)을 안길지 다시 책을 찬찬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나윤석 기자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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