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경쟁력 발휘 ‘K-팝’에
세계 미디어·비평가 배경 분석
‘정부 육성 성공작’이라는 시각
한국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매뉴얼 따르지 않는 自由정신
오늘날의 ‘한류’ 붐 이룬 비결
2000년대 초반 월마트나 까르푸 등이 국내 사업장을 매각하고 떠나자 세계 매스컴이 놀라워했다.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가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밀려 한국 내 판촉을 중단한 것이나, 구글이 이름도 듣지 못한 국내의 한 검색업체에 밀린 점에도 신기해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어떻게 이런 조그마한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느냐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이를 두고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자체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월마트나 까르푸의 한국 철수는 소수의 거대 복합기업이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에서 외국 기업이 직면한 도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은근히 공정치 못한 경쟁 환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국 시장을 사시(斜視)로 바라보는 경향은 많이 사라졌으나 아직도 흔적은 남아 있다. K-팝이 대표적이다. 서구 미디어와 문화비평가들은 오래전부터 K-팝의 성장 배경에 대해 그들 특유의 전문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요즘에는 K-팝이 미국 흑인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의 미국인 문화비평가 크리스털 앤더슨의 ‘K-팝은 흑인음악이다’라는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문화일보 8월 9일자). 그의 지적은 상당 부분 진실이다. K-팝이 힙합이나 R&B를 포함한 흑인음악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음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음악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오늘날 이토록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게 됐느냐 하는 대목이다. 그에 대한 서구 미디어나 학자들의 시각과 편향성은 놀랍도록 일관성을 띠고 있다. 즉, K-팝은 문화상품을 생산해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전파한 한류의 정치적 목표를 위한 수단이며,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자동차·휴대전화와 같은 성격의 상품이라는 것이다. 앤더슨의 책을 소개한 기자는 이 같은 주장을 전하면서 “서구의 눈에는 문화적 권력이 강하지도 경제적으로 지배적이지도 않은 작은 나라의 노래나 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누리자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을 문화에 과하게 적용했다”고 꼬집는다. 쉽게 말해 ‘산업’의 일환으로 정부의 주도면밀한 육성정책에 힘입어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이라는 이야기다.
불행히도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한국인의 특성과 성향을 제대로 분석했다면 나올 수 없는 비뚤어진 오해에 불과하다. 심리학자 허태균이 한국인을 분석한 ‘어쩌다 한국인’에 따르면 “한국인은 타인이 정해준 대로 조용히 따라가는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한국 사람들에게 “‘그냥 따라하세요’라는 말은 시비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허태균에 의하면 솔직히 이 세상에 한국인이 발명한 기계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한국인은 (외국에서 태어나고 만들어진) 기계제품도 (그들이 정해 놓은) 매뉴얼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 기계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무한대로 키워나간다.” 핵심을 찌른 말이다. 매뉴얼대로 하지 않기에 미국이 고향인 핫도그나 프라이드 치킨이 한국식 핫도그나 양념치킨으로 재탄생해 세계 곳곳의 소비자를 매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한국의 예비군처럼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집단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기네들끼리 놔두면 1992년 LA 폭동 당시 ‘루프톱 코리안(Rooftop Korean)’에서 보듯 막강 전투력을 발휘하는 집단으로 돌변한다. K-팝도 정부가 시켜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원래 한국인은 그런 사람들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에서 형성된 동양의 이미지야말로 서구인의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임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만일 서구 미디어 논리대로라면 정부 주도 경제정책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중국에서도 오늘날의 K-팝과 같은 성공 스토리가 태어나 세상을 매혹시키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럼 지금 ‘C-팝’의 현주소는 어떤가. 서구 미디어는 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시대착오적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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