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변호사, 前 울산지법 부장판사

대한민국 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천명하고 있고, 미국 연방헌법 전문도 ‘우리와 우리 후세에 대한 자유의 축복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는 한국도 미국도 헌법의 첫머리에서 천명할 정도로 인간에게 고귀한 가치이고, 그런 자유가 싫다고 한다면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기 어렵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자유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고로 자유란 개인의 기본권으로 발현되니 집단의 자유란 있기 어렵다. 집단이 자유롭다는 것은 집단을 장악한 절대권력자만 자유롭다는 뜻이다. 자유로운 개인이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 되는 정치이념이 자유민주주의다. 우리 헌법 질서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고 국가의 목적이나 필요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민주주의를 말할 때 당연히 그것을 자유민주주의로 이해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 안에서 내포된 자유의 의미를 지우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민주주의만 있으면 국민 전체가 통치자가 된 것이니 문제가 없다’라는 식으로 퉁 치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그 속에는 꼼수가 있다. 국민은 주권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생래적으로 통치의 대상이다. 그래서 자유를 강조하지 않으면 ‘당신들이 당신 자신들을 통치하는데 자유 따위가 뭐 필요하냐’라는 단순화의 호도에 넘어가기 쉽다. 국민인 당신들 전체의 의중인 총의(總意)만 확인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결국 개개 국민의 자유는 무시되고, 총의를 만들기 위한 선전과 선동이 동원된다.

이것이 경계해야 하는 ‘박수 민주주의’이고, 인민민주주의이다. 이런 위장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범주에 적당히 섞어 놓고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슬쩍 빼 버리려는 것이다. 이러한 무도한 짓의 시도는 일부 뒤틀린 586 운동권의 향수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기보다는 주체사상이라는 전체주의에 심취해 이것을 우리 사회에 이식하려 했다. 그런 이들의 잘못된 사고가 민주주의 앞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싶은 충동을 만든 것이다.

그러한 충동이 6·25전쟁을 전체주의 세력의 역사관에 맞춰 기술하게 하고 북한의 남침(南侵)이라는 객관적 사실까지 숨기게 했다. 6·25전쟁은 산업화 달성과 민주화운동 이전에 우리 국민이 피로써 이뤄낸 자유화 투쟁이다. 비록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체험으로 전체주의에 환멸을 느낀 국민이 목숨 바쳐 개인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이겨 냈던 숭고한 투쟁이었다. 이러한 자유화의 토대 위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무엇이 못마땅해서 자유민주적 헌법 질서에서 자유를 빼내 반쪽짜리로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부의 2022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에서 남침을 숨기고, 건국을 정부 수립으로 낮추며,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뺐다고 한다. 시안 작성자들이 2022년을 살면서 1980년대의 운동권 역사 인식을 주입하고 싶은 모양이다. 한심하다는 평이 과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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