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진용 기자의 그여자 그남자
- 댄스배틀 ‘스우파’대 ‘스맨파’… 냉소와 열광 사이
우려를 열광으로 ‘스우파’
‘서로 할퀴는 싸움판’ 예상 깨고
무대 즐기는 치열한 춤 대결에
성별 구분 넘어 ‘인간서사’ 완성
기대를 냉소로 ‘스맨파’
‘남자의 의리’보여주겠다 호기
비꼼·인격모독에 시청자 눈살
심사위원 “개싸움 보는 것 같다”


◇우려를 열광으로 바꾼, 그 여자들
‘스우파’가 시작되기 전, 시청자들은 그녀들의 ‘캣 파이트’(여성들의 거친 싸움)를 예상했다. 상대의 호흡과 혼잣말까지 들릴 만큼 좁은 무대에서 그녀들은 춤 배틀을 벌이며 끊임없이 눈빛을 주고받고, 꽤 묵직한 스킨십도 발생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스우파’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무대 위에서는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는 ‘노 리스펙트(No respect)’를 앞세운 대결이었지만, 무대 아래서는 서로를 존중했다. 춤 대결에서는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며 달려들던 이들이 막상 무대 아래서 인터뷰할 때는 서로에 대한 존칭을 잊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스우파’는 이 한 마디로 대변된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3회 ‘계급 미션’에서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와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가 맞붙을 때 허니제이가 내뱉은 말이다. 리더와 리더의 대결이자 맏언니급의 맞대결이었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말초 신경까지 곤두서게 만드는 상황에서 허니제이는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했을까?

‘스우파’를 마친 후 가진 간담회에서 허니제이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면 이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나. ‘얘들아 즐겨’라는 마음으로 한 말이다. ‘얘들아, 언니들이 즐기면서 배틀하는 거 잘 봐. 침체될 필요 없어’ 이런 의미였다.” 따지고 보면, 허니제이의 설명은 군더더기다. 그녀들은 ‘스우파’를 통해 이런 마음을 온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스우파’에 참가한 8팀은 ‘백업 댄서’라 불리는 이들이다. 무대 위의 주인공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숱한 무대를 소화하지만,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녀들이 ‘스우파’를 통해 처음으로 무대의, 더 나아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더 이상 순위에 얽매이지 않았고, 진정으로 무대를 즐겼다. 세미파이널에서 탈락한 모니카가 “대중이 더 많은 댄서를 알게 되는 목적을 이뤘다”고 소감을 말한 이유다. 멤버들은 눈시울을 붉혔지만, 모니카는 담담했다. 그는 진정한 ‘언니’였다.
자극적인 설정과 편집으로 치열하게 서로를 할퀴는 그림은 대중의 눈을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녀들은 시청자의 눈이 아닌 마음을 자극했다. 이건 여성 서사가 아니었다. 성별의 구분을 넘어선 한 편의 멋진 인간 서사였다.

◇기대를 냉소로 바꾼, 그 남자들
‘스맨파’는 ‘스우파’를 이어 호기롭게 시작했다. 1회 시청률은 1.3%(닐슨코리아 기준). ‘스우파’의 0.8%보다 높았다. 하지만 2회 역시 1.3%다. ‘스우파’가 1회 만에 1.9%로 치솟으며 신드롬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과는 대조된다. 왜일까? 제작진이 ‘스우파’의 본질을 잘못 읽은 탓이다.
‘스맨파’의 제작발표회에서 권영찬 책임 프로듀서(CP)는 “남자와 여자의 춤은 확실히 다르다. 남자는 군무, 힘 이런 부분이 강조된다”면서 “‘스우파’에서 여성의 질투, 욕심이 보였다면 ‘스맨파’에서는 남자의 의리, 자존심이 많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작 그 남자들의 싸움은 어땠을까? 각종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저스트절크와 프라임킹즈, K-팝 안무 시장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원밀리언과 위댐보이즈 등 대한민국에서 ‘춤 좀 춘다’는 8개 팀이 한데 모였다. 남성 댄서들 특유의 힘과 절도가 느껴지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방송 초반, 이보다 더 두드러진 건 남성들의 질투와 욕심이다.
약자 지목 배틀에 앞서 8팀이 서로에 대해 내놓은 평은 무시와 폄훼 일색이었다. 내로라하는 K-팝 그룹들의 안무를 짰던 경력 30년 차 최영준, 백구영이 있는 원밀리언을 향해 “트렌드에서 멀어졌다”고 하고, 상대방의 대기실을 습격하는 미션에서는 팀명을 적은 플래카드를 찢으며 ‘반 밀리언’이라고 비꼬았다. YGX 멤버들의 외모가 주목받는 것에 대해 “스트릿 면상 파이트 아니잖냐. 광고 좀 뽑아내자는 약은 생각으로 나오지 마라. 같이 경연하는 것도 짜증난다”고 인격 모독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첫 대결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했다. 엠비셔스의 노태현은 배틀을 시작하며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 욕을 날렸고, 프라임킹즈의 트릭스는 “미친 X아이 아냐?”라고 맞받아쳤다. 제작진은 블러 모자이크와 ‘삐’ 소리로 처리하며 자극성을 극대화했다. 이를 지켜보던 ‘스맨파’의 저지(심사위원)로 참여한 그룹 2PM의 멤버 우영은 “소싸움 닭싸움 개싸움 보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스우파’에 이어 또다시 저지로 합류한 가수 보아는 두 프로그램을 비교해달라는 주문에 “‘스우파’ 때 ‘맵다’라고 표현했는데, ‘스맨파’는 살벌한 얼음판 같다”며 “승복도 빠르고 복수심도 빨리 생기더라. 감정이 나노 단위로 바뀌는 듯한 현장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방송된 ‘스맨파’에선 권 CP가 말한 ‘남자의 의리’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보아가 말한 ‘살벌한 얼음판’ 같은 아귀다툼과 ‘복수심’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물론 중후반부로 가면서 의리와 자존심이 강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맨파’의 정체된 시청률이 보여주듯 적잖은 시청자들이 이미 ‘스맨파’에 실망했다.
◇‘그 여자’와 ‘그 남자’를 보는 성차별적 시각
Mnet 오디션 프로그램은 종종 남녀 시리즈를 만들며 차별적 시각을 드러냈다. 여성 래퍼들의 대결을 그리며 시즌3까지 제작됐던 경연 프로그램의 제목은 ‘언프리티 랩스타’였다. 남성 래퍼들이 주로 참여했던 또 다른 프로그램의 제목은 ‘쇼미더머니’였는데, 굳이 여성들의 경연에 ‘언프리티(unpretty)’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페미니즘 래퍼라 불리는 슬릭은 한 인터뷰에서 “여성 래퍼의 노래가 나왔을 때 음악으로 소비되는지, 외모로 소비되는지는 인터넷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언프리티’ 랩스타만 봐도 국내 힙합신(scene)에는 남성 중심 서사가 굳게 자리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