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 유목동물 + 인간, 112×145㎝, 한지에 수묵채색, 2010.
허진, 유목동물 + 인간, 112×145㎝, 한지에 수묵채색, 2010.

이재언 미술평론가

얼마 전 TV에서 어떤 사람이 고라니 새끼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산속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들이 사람이 주는 우유를 맛있게 빨고 있었다.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보고는 모른 체할 수 없었던 게다. 그 어미는 농작물을 해쳐 사살됐다는데, 장차 저 새끼들의 앞날은 어찌 되는 걸까.

사랑하든가 아니면 죽이든가, 그것만이 자연계의 숙명인가. 쉽게 해법을 찾기 어려운 이런 딜레마 앞에서 작가 허진의 그림을 소환해 본다. 사람과 동물은 어느 쪽이 더 우월할 것도 없는 등가적 존재임을 성찰하는 공간. 더 심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다른 동물계에 기생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내 안의 타자’인 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유독 혈압이 높은 그가 사람인 나를 내려본다는 것은 수고로운 일이다. 그나마 멸시의 시선은 아니다. 타자에 대한 어두운 기억들이 무의식의 가죽 위에 화인(火印)처럼 찍혔다가 지워지곤 한다. 해맑은 눈동자에 비친 ‘나’는 어떤 존재일까. 천성이 과묵한 그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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