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괘 같은 美 연준 메시지마다
한국·신흥국 경제는 발작증세
파월 한마디에 6800조 원 증발
추석 직후 예고된 금리경고장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돌파는
기업경쟁력 강화와 혁신이 답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평가로도 유명하다. 그렇다고 진실만을 말하는지는 의문이다. 미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는 연준 의장은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말 한마디로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실제 8월 말 미국 와이오밍주 휴양도시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의장의 긴축 의지 발언에 전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약 5조 달러(약 6814조 원)가 증발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렇다 보니 전 세계 관료와 이해당사자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성경 구절 다루듯 신중하게 해석한다.
전임자들처럼 파월 의장의 화술도 화려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엄청난 유동성이 풀린 탓에 인플레이션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파월 의장은 지난해 초부터 반년가량을 “일시적일 뿐”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같은 해 8월 미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이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을 때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금리 인상을 통해 다소 부드러운 착륙이 가능하다”고 제한적 평가를 내렸다. 올해 6월에서야 경기침체 전망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인정했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는 와중에 한발 늦은 파월 의장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금리정책의 성공 여부가 시기와 속도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분노는 누적됐다. 파월 의장은 경기침체의 위험신호를 계속 무시했다. 최근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감수하고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지속적인 금리 인상 단행을 연거푸 확인하고 있다.
시장 관측대로 오는 9월 20~21일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 연속 3번째다. 우리로서는 추석 연휴를 보낸 뒤 22일 오전 3시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날아오는 금리 인상 경고장을 받아들어야 할 판이다. 가혹한 시련의 계절이 예고돼 있다. 한·미 간 금리 역전으로 인해 국내에서 킹달러가 미국 본국으로 빠져나갈 뿐 아니라 요동치는 환율과 경제적 타격을 감수해야 한다. 환율 상승으로 우리 수출이 늘어나는 상황은 옛말이다. 경쟁국의 환율도 치솟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수록 글로벌 밸류 체인 고리가 촘촘하게 얽혀 수입물가 상승이 물가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파월 의장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실제 거짓말을 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맞았어도 돌이켜보니 지금 틀릴 뿐이다. 때마다 “향후 나오는 지표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말 역시 틀릴 수가 없다. 파월 의장은 되레 1년여 넘게 긴축론 입장에서 비판해온 저격수로부터 칭찬까지 들었다. 재무장관 출신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파월 의장의 인플레파이터 모습에 “그동안 저질러온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좋은 위치를 잡았다”고 치켜세웠다. 연준 의장은 이렇게 실수를 해도 상관없고, 실수를 만회하면 이상하게도 칭찬을 받는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잭슨홀 미팅에 처음 참석해 일갈했나 싶을 정도다. 이 총재는 “연준의 커뮤니케이션이 과도하게 단순한 경향이 있고, 그로 인해 경제주체들은 외부 환경이 급변할 때 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의 메시지를 거칠게 풀자면, 무소불위의 권력과 정보를 가진 연준이 모호한 메시지로 방향을 잘못 이끌고 전 세계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여 한 나라 경제가 휘청이게 하지 말라는 경고다. 이 총재는 공동집필 논문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신흥국 및 소규모 개방경제에 대한 교훈’을 통해서도 성장률·물가·실업률 등 거시경제 전망치와 함께 금리 경로를 제시하는 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와 달리 단순히 시기나 목표치만 제시하는 ‘비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어쨌거나 한국이 미 연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기초체력, 펀더멘털을 확고하게 다지는 방법 외에 없다. 환율이 곤두박질치지 않게 하려면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 과감한 규제혁신,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잠재성장력 제고를 위해 윤석열 정부가 갈 길은 멀다. 한은이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선제적 조치를 내놓는 동시에 재정 당국은 빈틈없는 폴리시 믹스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