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파울 비트겐슈타인

26세 때 데뷔…이듬해 군 징집
전투중 총상, 오른팔 절단 수술

수용소서 나무판자 주워 연습
왼팔·손가락 감각 살리려 애써

1916년 왼손으로만 연주 공연
바흐 등 작품 왼손용으로 편곡
당대최고 음악가, 피아노곡 작곡


전쟁의 상흔으로 한 팔을 잃었던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이 아닌 불굴의 의지로, 피아니스트로서 또 교육자로서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다. 바로 ‘왼손의 피아니스트’이자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파울 비트겐슈타인(1887∼1961)이다.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18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당대 최고의 부르주아 가문이었는데, 철강 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부자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클림트, 로댕 등의 작품을 수집하는 예술 애호가이기도 했다. 클림트가 그의 아버지를 ‘미술부 장관’이라고 불렀을 만큼 미술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미술 애호가였다면 그의 어머니는 음악 애호가였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요하네스 브람스, 클라라 슈만, 파블로 카살스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을 집으로 초청해 살롱 연주회를 열었는데 그 유명한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 Op.115도 바로 비트겐슈타인의 집에서 초연됐다. 또 음악가들에 대한 열정적인 후원 또한 아끼지 않았는데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에게는 1742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를 대여해주기도 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비트겐슈타인은 일찍이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에게 음악을 배웠고, 그들과 옆에 앉아 연주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26살이 되던 1913년, 비트겐슈타인은 빈에서 음악회를 통해 피아니스트로 정식 데뷔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 군에 징집됐는데 이때 큰 불행을 맞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 역시 참전하여 전투를 벌이던 중 총상을 입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적군의 총탄은 그의 오른쪽 팔꿈치를 관통했고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오른팔을 절단해내야만 했다. 그런데 적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분노나 좌절이 아닌 불굴의 의지를 불사른다. 그는 한 팔을 잃은 충격에서 벗어날 새도 없이 연습에 돌입했다. 수용소에서 그는 나무판자를 주워다가 그 위에 손가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로서 왼팔과 왼손가락들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듬해인 1915년 생환해 빈에 돌아온 그는 왼손 피아니스트로서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고, 1916년 왼손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회를 갖게 된다. 그는 왼손을 위한,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꾸리기 위해 작곡가 라보르와 함께 바흐, 모차르트, 브람스, 쇼팽 등의 작품들을 왼손용으로 편곡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명망 있는 작곡가들에게 왼손을 위한 수준 있고 완성도 높은 피아노 작품을 위촉한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벤저민 브리튼, 모리스 라벨, 파울 힌데미트,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비트겐슈타인을 위한 왼손 피아노곡을 작곡해 냈다. 그의 음악적 열정은 그를 피아노 교육자로 이끌어 1931년부터 1938년까지 빈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는 그를 유대인으로 분류했고 더 이상 빈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자 스위스로 도주한 후 미국으로 이주해 1961년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 오늘의 추천곡 라벨 ‘왼손을 위한… 협주곡’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작곡된 왼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1931년 로베르트 헤거가 지휘하는 빈필과 비트겐슈타인의 협연으로 초연되었으며, 작곡가인 라벨의 지휘로는 1933년 파리에서 파리 교향악단과 함께 역시 비트겐슈타인의 피아노로 연주됐다. 라벨 특유의 화성감과 재즈풍의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 손으로 연주된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밀도 높은 감동을 선사한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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