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문화부장

추석 연휴는 전통적으로 한 해 ‘콘텐츠’ 시장, 정확하게는 영화 시장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바로미터였다. 가족들이 몰리는 시간으로 대작·야심작들의 격전지였다. 하지만 올해는 쓸쓸했다. 올 추석 연휴 극장가는 경쟁작 없이 ‘공조2:인터내셔날’, 딱 한편의 완승으로 끝났다. 영화는 연휴 마지막 날 손익분기점(관객 수 300만 명)을 돌파했지만 일일 관객 수가 100만 명을 쉽게 넘던 팬데믹 이전 명절 연휴엔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한국 대작들이 맞붙은 여름 시장이 1000만 영화를 한 편도 못 내놓고 마무리된 터라 한국 영화 시장의 장기적 침체 우려는 더 높아지고 있다. 여전한 코로나19의 영향,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의 관람 방식 변화, 영화 관람료 인상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이다. 관람객 입장에선 극장에 가서 봐야 할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 영화시장의 파이 자체가 작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OTT 쪽 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하반기 최대 기대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리남’은 추석 연휴에 공개돼, 2일 차에 넷플릭스 시리즈 세계 8위에 올랐다. 좋은 결과지만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될 것이라는 기대만큼 ‘역대급’ 페이스는 아니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 공개돼 세계적 열광을 불러온 ‘오징어 게임’ 이후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넷플릭스를 포함해 디즈니+, 애플 TV 플러스, HBO맥스까지 세계적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한국 작품에 자본을 쏟아부어 왔다. 물론 ‘오징어 게임’ 한 편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 시장에선 K-팝이, 영화계엔 박찬욱·봉준호 감독이 있었고,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해온 K-드라마가 있었다. 여기에 상상력이 한계에 온 할리우드,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시장의 요구, 백인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성적·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 등이 맞물려 생긴 자리에 문화적 저력을 지닌 한국콘텐츠가 초대된 결과이다.

하지만 그렇게 초대된 한국콘텐츠는 최근 양적 팽창을 이뤘지만 질적 도약 면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2021∼2022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는 영화·드라마를 합해 20편이 넘지만 그중 주목받은 것은 ‘지금 우리 학교는’과 ‘지옥’ 정도다. 한국판 ‘종이의 집’ 등을 포함해 여러 작품이 떠들썩하게 공개됐지만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글로벌 순위의 문제가 아니다. ‘오징어 게임’ 같은 역대급 성과는 매년 몇 번씩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상상력이나 문제의식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생각해 볼 지점이다. ‘오징어 게임’ 이후 한국 콘텐츠 시장은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는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 미국 드라마에서 많이 본 국적불명의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몸집을 불리고, 규모를 키우고, 자극의 강도만 높아졌을 뿐이다. 세계 최고에 한 번 섰다고 ‘1등의 함정’에 빠진 모양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으로 밝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깊게 들려줘야 한다.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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