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터…’ 쓴 김중혁 작가
뭐든사라지게하는 소설가 등장
괴짜 주인공, 내 이야기는 아냐



베스트셀러 작가가 실종 사건 참고인으로 소환된다. 실종자가 옛 여자친구인 데다가, 최근 발표한 소설이 그녀의 삶과 흡사해서다. 소설가는 태연하다. 실종자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계약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 또, 사라지긴 했으나 실종은 아니라는 둥 알듯 말듯한 소리만 한다.

김중혁(사진) 작가의 새 장편소설 ‘딜리터:사라지게 해드립니다’(자이언트북스)에 등장하는 이 수상한 소설가는 사실 초능력자다. 사람이나 물건을 사라지게 하는 ‘딜리터’. 실종자는 의뢰인이었고, 사라진 이들의 삶은 소설이 돼 팔렸다. 그의 말대로 이것은 실종이 아닐지도. 세상은 무수히 많은 레이어(층)로 이뤄져 있고, 그들은 그저 다른 레이어로 이동해 간 것일 수도. 김 작가가, 왜 소설가를 투입시켰는지 알 것 같다. 소설이야말로 우리를 끊임없이 다른 세계로 이동시켜 주는 매개체니까. 지난 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작가는 “딜리터가 의뢰인을 이동시켜주듯, 소설가는 독자들을 다른 삶의 레이어로 옮겨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딜리터들이 자신들의 ‘삭제’ 업무를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라고 말하는데, 김 작가는 소설을 쓰고, 읽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흔히 독서를 시간 죽이고, 때우고, 쓰는 일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 삶의 레이어가 쌓이고, 더 많은 인생을 더 밀도 있게 사는 셈이니 시간을 ‘번다’는 게 맞죠.”


이번 소설은 출간 전 작가명을 감춘 ‘블라인드 가제본’(오른쪽 사진)으로 먼저 선보여 화제가 됐다. 지우고 싶은 물건이나 사람을 적어서 보낼 수 있는 ‘딜리팅 의뢰서’도 동봉돼 있어, 색다른 재미를 제공했다. 당시 김 작가는 흥미로운 한편, 걱정도 되는 ‘양가 감정’이었다. 그는 “작가를 모른 채 읽고 쓴 독자들의 리뷰가 굉장히 재밌었다. 이번처럼 리뷰를 열심히 찾아본 적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아예 가명으로 출간해 볼까 조금 고민했는데, 솔직히 그건 좀 자신 없어요, 하하.”

책은 영상화를 염두에 둔 ‘언톨드 오리지널스’ 프로젝트로도 주목된다. 김 작가를 비롯해 김영하, 김초엽 작가 등이 소속된 블러썸 크리에이티브와 CJ ENM이 함께 기획한 것으로, 지적재산(IP)을 소설로 선보인 후 영상 콘텐츠로 확장하는 게 목표다. 김 작가는 “초반에는 이 장면이 영상에 어울릴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금세 잊고 내 스타일대로 쓰게 됐다”고 했다.

블라인드 가제본과 영상화 등 책은 새로운 길 위에 놓여있다. 그런데 ‘딜리터’ 속 소설가가 전자책을 비판하며 책의 ‘물성’을 강조하는 건 의외다. 소설가는 전자책은 양옆으로 펼치지 못해 ‘책점’을 볼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이는 김 작가의 평소 습관에서 나온 것. “책점을 자주 친다”는 그는 “책은 베개도 되고, 라면 받침도 되지만 가장 큰 장점은 양옆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책점을 치며 종이책을 강조하는 장면은 재밌는 요소이지만, 책이 읽히지 않는 서글픈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이 천대받는 때에 소설가로 사는 건 난처한 일”이라면서 “버르장머리 없는 소설가를 등장시킨 건 사양산업 종사자의 울분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소설가는 김 작가는 아니다. “소설가가 등장해 소설과 책 이야기를 하니 오해하실 수도 있지만, 제 얘기는 아니에요. 저는 전자책을 정말 좋아하고 많이 읽거든요. 아, 그리고 표지를 보시면 얼굴도 정말 다르고요, 주인공처럼 빌딩도 없습니다, 하하.”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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