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재가동한 백남준의 ‘다다익선’. 노후화로 인해 지난 2018년 가동을 중단했다가 보수·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불을 켰다.  국현 제공
지난 1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재가동한 백남준의 ‘다다익선’. 노후화로 인해 지난 2018년 가동을 중단했다가 보수·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불을 켰다. 국현 제공


■전속 엔지니어 이정성, 1003개 모니터 재가동에 감격

“선생은 신기술 대체에 개방적”
韓·中 골동품 뒤져 부품 확보
4년 7개월 만에 영상 되살려
하루 2시간 미디어아트 선봬




“작품이 새 생명을 찾은 것이어서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도 늙어가는 처지이니 감회가 클 수밖에 없었지요.”
엔지니어인 이정성(78) 아트마스타 대표는 지난 16일 이렇게 말했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의 대표작 ‘다다익선’이 국립현대미술관(국현·MMCA) 과천관에서 전날 재가동한 것에 대해서다. 그는 백남준이 살아 있을 때 전속 기술자로서 세계를 함께 누비며 작업을 했다. 노후화로 인해 가동이 중단됐던 ‘다다익선’이 폐기되지 않고, 그 위용을 다시 선보인 것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현에 따르면, 이 대표는 보수·복원 작업 자문위원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을 줬다. 미술관 측이 재가동 기념식에서 그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것은 그의 공로가 결정적이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최대 규모 작품인 ‘다다익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과천관에 설치했다. 우리나라의 개천절(10월 3일)을 상징하는 1003개의 브라운관(CRT) 모니터를 높이 18m, 지름 7.5m의 철골 구조에 오층탑처럼 쌓아 올렸다. 브라운관에서는 8개의 영상이 흐르는데, 한국과 유럽의 문화유산이나 예술가들의 연주 모습을 담았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예술과 기술의 조화를 꿈꾸는 백남준 예술의 고갱이가 표현돼 있다.

그런데 브라운관 모니터의 수명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주 문제가 발생했다. 국현은 지난 2003년 모니터를 전면 교체하는 등 수리를 거듭했지만, 노후화에 따른 누전과 화재 등 위험이 커지자 2018년 2월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다다익선’의 향방에 대한 논란이 미술계 안팎에서 거세게 벌어졌는데, 국현은 보존·복원 작업을 결정했다. 복원팀은 한국과 중국 골동품 시장을 샅샅이 뒤져서 구형 브라운관 모니터를 확보했고, 그 결과로 모니터 737대를 바꾸거나 고쳤다. 사용이 어려운 6·10인치 브라운관 모니터 266대는 외형을 유지하면서 LCD 패널로 바꿨다.

백남준(오른쪽)이 1994년 작품‘메가트론’ 제작 협의차 엔지니어 이정성(왼쪽) 씨 사무실을 방문해 기기를 점검하는 모습.   이정성 씨 제공
백남준(오른쪽)이 1994년 작품‘메가트론’ 제작 협의차 엔지니어 이정성(왼쪽) 씨 사무실을 방문해 기기를 점검하는 모습. 이정성 씨 제공


이때 이 대표는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철학은 영상에 담겨 있기 때문에 모니터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백남준 생전 작품 관리의 전권을 위임받은 그는 “선생은 작품 외형을 신기술로 대체하는 것에 개방적이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경기 용인에 있는 백남준아트센터가 보유한 작품들이나 울산시립미술관이 해외에서 매입한 ‘거북’ ‘시스틴 채플’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 등의 관리에도 자문을 한다. “작품의 본질이 유지되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작가의 본래 뜻이 무엇인지 잊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걸 막고 싶습니다.”

외형을 바꾸되 본질을 지키는 것. 이 원칙에 따라 재가동한 ‘다다익선’은 미디어아트 복원사에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대의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미디어아트의 특성상 노후화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국현은 “작품 보존을 위해 주 4일(목∼일요일), 하루 2시간(오후 2∼4시)만 가동하는데, 다음 달 3일까지는 재가동을 기념해 주 6일(화∼일요일), 하루 2시간 불을 켠다”고 밝혔다.

한편 아카이브 전시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이 내년 2월까지 과천관에서 열린다. 백남준이 1984년 한국에 와서 부친의 묘소를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영상 ‘한국으로의 여행’ 등을 볼 수 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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