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의원 발의 개정안에도 시기상조 태도

대선 공약에 포함되고 나서야 검토 시작해

국회는 “사회적 논란 제기될 때”로 검토 미뤄


지난 14일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한 시민이 포스트잇을 붙이며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4일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한 시민이 포스트잇을 붙이며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뒤늦게 ‘스토킹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반의사불벌죄’ 조항 삭제 검토에 나섰지만, ‘뒷북’ 대응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법안 시행 2개월 만에 스토킹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개정 움직임에도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다가 결국 사회적 공분을 사는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법을 손보는 ‘사후약방문’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2월 스토킹처벌법 제정 논의 당시 정부안에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해당 법안은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지 않고, 정부안 그대로 지난해 4월 제정, 10월 21일 시행됐다.

법 제정 직전인 지난해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스토킹 범죄를) 반의사불벌죄로 한 이유가 뭐냐”는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이용구 당시 법무부 차관은 “정의 자체가 스토킹이 본인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접근하는 행위를 방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 스토킹처벌법 제2조에선 스토킹 행위를 정의하면서 ‘피해자 의사에 반하여’를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단체 등에선 반의사불벌죄 규정(제18조 3항)를 비롯해 ‘피해자 의사’를 스토킹 행위로 정의 내리자, 법이 피해자를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 불원서 등을 받기 위해 2차 피해를 가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 차관은 “(스토킹 범죄는)일반적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에 기초해서 처벌도 이뤄져야 된다는 그런 ‘일관성’ 때문에 반의사불벌죄로 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선 피해자 보호보다는 “문제 되면 고치자”는 안일한 생각이 우선시됐다. 당시 소위원회에서 유 의원은 “항상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일단 가장 제한적으로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처벌 불원 의사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논란이 새로 제기된다고 그럴 때, 그런 문제가 나온다면 다시 한 번 그때 개정 논의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이에 소위원장을 맡은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러면 반의사불벌죄로 일단 정부안대로 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정리했다.

법 시행 이후 국회를 중심으로 반의사불벌죄 폐지 움직임이 일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정부는 사실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개정안에 법무부는 “피해자의 의사가 다른 사건과는 달리 특별히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것은 좀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을 내려 주셨으면 하는 의견”이라고 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추이를 본 다음에 그다음에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10월부터, 시행일이 아직 만 두 달이 안 된 상태이고 현재 이걸로 인해서 조사나 기소까지 이르는 그런 예도 좀 봐야될 것 같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만 “반의사불벌죄로 해 놓으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꾸 압력을 넣는 수단이 된다는 이런 지적도 있다”며 “저희는 삭제가 맞다는 의견”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는 올해 4월 뒤늦게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발 개정안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다가 대선 공약 사항에 포함되고 나서야 태도를 바꾼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스토킹 범죄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우선하기보다 정권 입맛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공무원들과 안일한 국회 입법 논의 과정이 결국 신당역 사건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윤정선 기자
윤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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