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된 9·19 군사합의는 남남갈등의 상징이 되다시피 할 정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 이듬해 일단의 예비역 장성들이 군사합의가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며 당시 전·현직 국방부 장관 2명을 이적행위로 고발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북한에 합의 이행을 촉구하되 북한의 변화가 없으면 우리도 계속 지키기 어렵다며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역대 남북합의는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들”이라면서 평양공동선언과 9·19 군사합의의 지속적인 이행을 강조했다.
9·19 군사합의의 가장 큰 문제는, 적대세력 간에 체결하는 군비통제조약의 기본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상대에 대한 오해·오판의 가능성을 낮춰 전쟁 위험을 줄이는 것이 군비통제의 목적이므로 많은 정보를 공개해서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는 군비통제 역사에 유례없이 정찰 활동을 금지했다. 정찰 능력이 우수한 한국에 불리할 뿐 아니라, 상대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안보 불안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30년 전 남북한이 불가침 협상에서 타결하지 못한 네 가지 사항 가운데서 북한의 요구 사항(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무력 증강 금지, 상대방에 대한 정찰 금지, 상대방의 영해·영공 봉쇄 금지)만 반영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에 한국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수도권 안전보장 문제는 수용되지 않았다. 당시 협상에 참가했던 군 선배들이 통탄할 일이며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다.
군비통제조약의 위반이나 탈퇴는 늘 있는 일이다. 러시아는 유럽 재래식무기감축조약(CFC)의 이행을 중단했고, 미국은 중거리핵미사일조약과 영공개방조약에서 탈퇴했다. 국익이 훼손됐다고 판단되면 조약에서 탈퇴하는 게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주권국가의 권리다. 핵확산금지조약(NPT)도 제10조에서 이런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윤 정부는 전임 문 정부에서 체결한 9·19 군사합의가 국가안보에 해롭다고 판단하면 탈퇴하고, 새 환경에 적합한 군비통제 방안을 북한에 제의할 수 있다.
조약은 국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안보를 해치는 잘못된 합의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1991년 노태우 정부에서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탈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은 이 선언에서 핵무기는 물론 재처리·농축시설까지 포기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이 비핵화 외교를 한다면서 이 선언에 발이 묶여 있는 사이에 북한은 선언을 철저하게 위반했고, 급기야 한반도에서 핵(核)을 독점하게 됐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허술한 합의다. 예를 들어, 재처리시설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북한은 처음부터 방사화학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재처리시설을 가동했다. 노태우 정부가 북한의 명백한 위반 사항을 묵인한 셈이다. 결국,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문화(死文化)한 문건이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북한이 핵보유 완성을 선언하고 핵선제공격까지 위협하는 마당에 이 선언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다. 차제에 9·19 군사합의와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동시 탈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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