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 기류
트럼프나 시진핑과 뭐 다른가
韓 격앙 기류에 美 당혹감 뚜렷

반미운동 악용될 여지도 우려
자유민주주의 위기 맞은 한미
동맹 대의 위해 역지사지 해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위기로 내몰렸던 한미동맹을 다시 위태롭게 만드는 화근이 될 조짐이다. IRA에 따라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빠진 현대·기아 전기차 문제는 경제 이슈에서 벗어나 ‘한·미 관계의 정상성’을 묻게 하는 외교·안보 이슈가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명시된 내국인 대우 조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을 못 받게 된 것은 미국의 저변에 깔린 한국 경시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번지는 기류다. 보조금 문제를 넘어서 자존감을 할퀴는 문제로 악성 진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제주포럼 참석 등을 위해 최근 방한한 존 울프스털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담당 선임 보좌관을 만났을 때 이 문제를 놓고 토론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이 뭐가 다른가” “프렌드 쇼어링을 권장한 뒤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압박하는 게 미국 본색인가” 등의 단도직입적 질문을 던졌다. “사드 보복을 하는 중국과 미국이 다를 게 없다”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게 동맹이냐”는 시중의 날 선 비판도 전했다. 그는 질책성 질문에 놀라움을 표하며 “한국 여론이 이렇게 격앙된 상태인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울프스털은 바이든 행정부 내부 기류에 밝은 민주당계 인사다. 현재 비확산 분야 싱크탱크인 글로벌 제로의 선임 보좌관으로 일하는 그는 IRA 논란이 지난해 미국·영국·호주의 핵잠수함 관련 오커스 협정 때 배제된 프랑스의 반발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관련 부분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결여되어 발생한 일이고, 오커스 협정 파동 때처럼 바이든 대통령이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바이든 대통령이 IRA에 대한 한국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부주의 때문에 가장 성공한 회담이라던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효과는 물거품이 됐다. 한국 여론이 들끓는 데도 뉴욕에서 한·미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때 바이든 대통령에게 IRA 문제를 제기했고, “한국 측 우려를 잘 알고 있으니 진지하게 협의해 나가자”는 답변을 들었다는 게 대통령실의 발표다.

36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바이든 대통령이 IRA 문제점을 몰랐을 리 없다. 최근 그는 행정명령 형식의 과잉 조치를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11·8 중간선거를 위해 눈 딱 감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요즘 행보에서도 그런 기류가 느껴진다. 그는 지난 1일 필라델피아 연설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지지자들을 “공화국에 위협적인 극단주의 세력”으로 규정한 뒤 “이들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IRA는 공화당 지지 중서부 블루칼라 유권자와 MAGA파 공화당 후보를 분리시키기 위해 만든 고육책일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저지가 미국의 민주주의 파괴를 막는 길이라는 데 공감한다. 트럼프파의 발호를 막기 위해 중간선거 때까지라도 IRA를 유지하겠다는 입장도 이해가 간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평생 검찰에 몸담았던 윤 대통령이 정치참여 선언 1년도 되지 않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트럼프파처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더불어민주당 포퓰리스트 후보의 집권은 막아야 한다는 민심이 뭉쳤기 때문이다. 미국이 급하다고 IRA를 고수한다면 한국인들이 견지하는 동맹 신뢰가 흔들리게 되고, 나아가 운동권 출신 좌파들에 의해 반미 캠페인 소재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미국이 트럼프파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듯, 한국도 친북·친중적인 민주당 및 좌파 세력의 비자유주의적 포퓰리즘과 싸워 이겨야 한다. 울프스털은 방한 후 블로그에 올린 ‘한국이 불안하다(nervous)’는 글에서 “한국에서 경제정책은 곧 국가안보정책”이라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위해 IRA를 고쳐야 한다”고 썼다. “IRA 개정은 국가안보를 위해 긴요하다”고도 했다. 한·미 양국 모두 민감한 시기다. 미국은 역지사지의 자세로 동맹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이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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