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지난 16일 경기 성남시 연구실에서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을 들여다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음식 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지난 16일 경기 성남시 연구실에서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을 들여다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 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꼽은 ‘설탕과 권력’

“TV에도, SNS에도 음식 콘텐츠가 넘쳐나는 ‘먹방의 시대’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축복이지만, ‘먹는 행복’의 이면엔 누군가의 불행이 있습니다.”한국 대표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고의 고전’으로 미국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원제 ‘Sweetness and Power’)을 추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존스홉킨스대 교수로 재직하다 2015년 별세한 민츠는 일생 동안 식량 생산에 숨은 권력관계를 고찰한 석학이다. 1985년 펴낸 ‘설탕과 권력’은 그의 문제의식이 집대성된 명저로 16∼19세기 유럽인들의 식탁에 설탕이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로 오르게 된 과정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맥락 안에서 관찰한다. 국내에는 1998년 출간됐다 지금은 절판된 상태. 지난 16일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실에서 주 교수를 만나 결코 달콤하지 않은 ‘설탕’ 이야기를 나눴다. ‘식탁 위의 한국사’와 ‘백년식사’로 잘 알려진 주 교수는 최근 음식 연구 노하우를 담은 ‘음식을 공부합니다’와 조선 먹방 화첩을 표방한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 음식사’를 잇따라 출간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7세기 이후 유럽 설탕 수요 폭증
흑인 노예 끌고와 사탕수수 재배
해방 후엔 저임금 인력으로 대체
제국주의·자본주의 논리 보여줘

현재도 제3세계 빈민 수탈 빈번
한국 깻잎농장서 유사사례 발생
직거래로 정당한 대가 지급하는
공정무역 활성화가 개선 첫걸음


―‘설탕과 권력’을 처음 읽은 건 언제인가.

“1990년대 후반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다. 인류학 렌즈로 음식을 연구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싶다는 목표를 심어준 책이다. 음식을 먹방이 아닌 학술적으로 접근할 때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이 고전을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

―이 책이 음식 인류학 역사에서 지니는 의미는.

“민츠 이전엔 대부분의 문화 인류학자들이 관념론적 시각으로 음식을 연구했다. 특정한 지역이나 공동체에서 어떤 음식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불길한 징조’ 때문이며,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행복한 감각을 전해주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런 입장을 견지한 대표적 학자가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다. 하지만 민츠는 법·제도가 그렇듯 음식 역시 정치·경제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20세기 중후반 푸에르토리코 사탕수수 농장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하며 제1세계 국민의 ‘소비’를 위해 제3세계 노동자들이 먹거리를 ‘생산’하는 불평등에 주목했다.”

―왜 설탕인가.

“설탕의 역사가 곧 제국주의 팽창의 역사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17세기 전까지 영국·프랑스 등 서유럽 국민에게 ‘단맛’을 공급해준 자원은 과일과 꿀이었다. 그런데 사탕수수즙으로 만든 자당은 과일이나 꿀을 뛰어넘는 ‘단맛의 신세계’를 품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급증하는 설탕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북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등 열대지역 식민지에 사탕수수 농장을 세웠다. 제당 산업은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노동 집약적 산업인 탓에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흑인 노예들로 인력을 충당했다. 제국주의에 바탕을 둔 노예 제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식품이 설탕인 셈이다.”

흑인 노예들은 농장주가 고용한 ‘몰이꾼’들의 감시 속에 일했다. 누더기를 걸치고 열대지역의 무더위와 싸우면서도 작업 속도가 느려지면 채찍질을 당했다.

노예 제도는 19세기 폐지됐으나 그 이후에도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제국이 농장주로 고용한 하청 자본가들은 해방된 노예들이 떠난 틈을 값싼 노동자로 메웠다. 제당 산업이 ‘낮은 인건비→상품 가격 하락→수요 증대’로 이어지는 초기 자본주의의 전형적 모델을 보여준 것이다. 민츠의 표현처럼 ‘채찍이 사라진 자리를 노동자들의 배고픔’이 채우면서 자본가와 귀족의 사치품이었던 설탕은 모든 계급이 즐기는 생활필수품으로 변모했다. 설탕이 들어간 차(茶)의 등장과 고급 디저트 요리 개발은 싼값의 설탕 확보로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에는 설탕이 언제 들어왔나.

“조선 시대 사람들도 사탕수수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한국인이 수입된 설탕을 처음 맛본 건 일제강점기 때다. 오키나와(沖繩)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한 일본인들은 유럽 자본가들처럼 식민지 노동자를 싼값에 착취했고, 그들의 야욕은 동남아시아 침략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설탕은 명절 때 부자들이 주고받는 귀한 선물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일반 대중도 싼값의 설탕을 즐기기 시작했다. 제국주의와 함께 설탕이 사치품에서 일용품으로 변화한 유럽 내 패턴이 100∼200년 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그대로 반복된 셈이다.”

―‘설탕과 권력’의 메시지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

“물론이다. 최신식 가공 공장이 들어선 지금도 제3세계에선 빈민들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작업한다. 민츠가 ‘설탕과 권력’에서 제국주의 흥망과 자본주의 발전 양상을 살피며 추적한 노동 실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탕수수 재배지가 아니지만,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의 깻잎 농장에서 유사한 착취를 당한다. 최근 출간된 이주 인권 활동가 우춘희의 ‘깻잎 투쟁기’(교양인)에 따르면 깻잎은 1년 내내 일거리가 있고 사람의 손으로만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들은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 거주하며 하루 10시간씩 일한다. 최저임금 수준인 월급은 그마저도 체불이 빈번하고, 하루 1∼2시간은 공짜 노동을 강요받는다. 우리 밥상이 그들의 피눈물로 차려지고 있는 것이다. ‘설탕과 권력’ 첫 장에 나오는 ‘유럽의 행복이 다른 지역의 불행에 빚지고 있다’는 일침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세계 식품 체제로 번역되는 ‘글로벌 푸드 레짐’은 생산과 소비를 서열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많은 이윤을 욕망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직거래를 통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공정무역’ 활성화가 첫걸음이다. 체제가 지닌 불평등을 극복해야 우리 식탁을 ‘공정’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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