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 & Zarewicz / ZAiKS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 & Zarewicz / ZAiKS


"인간이 문학을 발명한 건 세상이 인간에게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라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신작 ‘다정한 서술자’(민음사)의 한국 발간에 맞춰 진행된 서면 인터뷰(번역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에서 이렇게 밝혔다. ‘다정한 서술자’는 토카르추크가 2년전 폴란드의 코로나19 봉쇄령을 계기로 직접 열두 편의 글을 골라 엮은 것으로, 토카르추크가 이해하는 문학, 그리고 그것의 실현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위험한 세상과 연약한 인간, 그리고 문학의 위대한 힘에 대한 책. 토카르추크는 "초창기 공포를 많이 극복했으나 팬데믹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면서 이 책이 팬데믹의 터널을 건너는 독자들에게 여전히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임을 강조했다. 동시에, 노벨상 이후 처음 펴낸 이 에세이에 대해 "작가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실제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찰해 본,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책에는 문학 작품을 읽는 방법뿐 아니라 글쓰기와 독서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많다. ‘문학은 세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을 끊임없이 직조하는 과정이고, 이야기는 물, 불, 흙, 공기 다음의 다섯 번째 원소’라고 강조했다. 지금 어떠한 문학, 어떤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나.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지금의 내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님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따라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정을 일깨우고, 우리를 발전시켜서 변화의 희열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것, 역사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시공을 초월한 상상과 환상의 세계, 유토피아나 판타지, SF에 매료되는 듯하다. 특히, 유럽에서는 텍스트가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만 담당하는 또 다른 세계, 즉 이미지나 가상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주가 되는 인터넷의 세계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독서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



▲ 2007년에 쓴 ‘방랑자들’은 끊임없는 여정에 놓인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 인류의 노마드적 본성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여행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을 겪은 뒤 생각이나 견해가 바뀌었나.



"요즘 난 ‘방랑자들’(2007)이 한 시대를 기록한, 역사책이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책은 세상이 적극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세계화의 추세가 영원히 지속할 것처럼 여겨졌던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날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 전염병이 국경의 빗장을 걸어 잠갔듯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국경이 폐쇄돼 버렸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인간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여행은 누군가에게는 특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전쟁과 배고픔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2007년에 쓰인 ‘방랑자들’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에세이집 ‘다정한 서술’을 펴낸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 & Zarewicz / ZAiKS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에세이집 ‘다정한 서술’을 펴낸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 & Zarewicz / ZAiKS


▲‘다정한 서술자’에서 언급된 ‘사인칭 서술자’라는 관점이 새롭다.



"사인칭 서술자란 극도의 전지적 시점을 가진 스토리텔러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서술자, 예를 들어 개구리의 관점에서 새의 관점으로 자유롭게 시점을 넘나드는 초월적 지위를 가진 서술자, 저자의 한계를 초월하는 서술자를 말한다. 올 6월 출간한 장편 소설‘엠푸사- 자연주의 테라피 공포물’(국내 미발간)에서 이러한 내러티브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보았다. 일인칭 복수인 ‘우리’로 등장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등장 인물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문학 속 가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 ‘토카르추크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했다. 늘 작품의 지향점과 주제 의식에 부합되는 새로운 형식을 고안해 왔고, 수반되는 고충에 관해 토로한 적도 있다. 문학적 실험을 거듭하는 이유는.



"작가들 중에는 끊임없이 수정하고 다듬어 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완성해 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를 반복하는데, 궁극적으로는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정점을 향해 올라간다. 그러나 나와 같은 부류들은 새로운 텍스트를 시작할 때마다 지금까지 쓴 것들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잊어버리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곤 한다. 우리에겐 새로운 형태를 찾는 시도 자체가 일종의 자기만족이다. 탐험가가 느끼는 설렘과 흡사하다."



▲대안적 삶, 동물권, 전 생명체를 연결하는 글로벌 휴머니즘 연대를 제안해 왔다.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지.



"노벨 문학상 상금의 일부를 출자하여 ‘올가 토카르추크 재단’을 만들었다. 미래, 평등, 창작, 다정함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자유를 수호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폴란드 문학을 전 세계에 알리고, 환경 운동을 펼치는 것이 기본적인 설립 목적이다. 가장 최근엔 내가 사는 브로츠와프시가 속한 돌니 실롱스크주의 헌법에 동물의 존재와 권한을 명시하게끔 하는 활동을 벌였다. 내 꿈은 무책임한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하듯이 강과 산, 그리고 풍경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책에 실린 ‘헤르메스의 과업’에서 다른 문화의 해석가로서 번역가의 중요함에 강조한다. 새롭게 ‘번역’되기를 희망하는 세계(국가, 시대)가 있다면.



"러시아가 떠오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웃 나라를 침략했는지 알 수 없고, 그들의 야망과 탐욕을 용납할 수 없다. 무자비한 전쟁을 용인하고, 나아가 찬양하는 사회, 그러면서 동시에 따뜻한 나라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를 원하는 이 이율배반적인 사회를 우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역설적인 의미에서 러시아야말로 현시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는 나라가 아닐까."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 & Zarewicz / ZAiKS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 & Zarewicz / ZAiKS


▲노벨 문학상 이후 독자층이 전 세계로 확장됐다. 관심을 기울이게 된 테마나 다루어 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두세 권의 소설을 기획 중이다. 하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 폴란드의 역사와는 차별화되는 고유한 지역사를 가진 돌니 실롱스크주를 소재로 한다. 일종의 사가(saga), 그러니까 어떤 가문이나 공동체를 역사적·전기적으로 서술한 대하소설이다. 다만 가족이나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준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천천히, 신중하게 작업할 생각이다. 짜릿한 희열을 만끽하며 계속해서 많은 책을 읽고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터득하면서, 여전히 배우고 공부하는 중이다. 집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먼 훗날 언젠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우리의 컴퓨터 스크린이 꺼져 버리는 날이 도래할 수도 있으며, 그때가 되면 종이책이 다시금 가치 있고 바람직한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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