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역 의원들 이기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
정부 내서도 “쌀 농민들 인식변화 필요… 농사도 사업”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정부의 전격적인 쌀 45만t 격리조치로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쌀 격리조치 의무화를 법에 명시해 쌀 과잉 생산 시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하자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상임위원회 법안소위까지 통과시켰지만 정부의 격리조치와 여당의 안건조정위 회부로 본회의 통과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매년 쌀 생산에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쌀 과잉생산, 혹은 쌀 소비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답보 상태에 머물러있다.

쌀은 농축산 분야에서 가장 예산이 많이 투입되는 품목이다. 정부가 추진키로 한 45만t 격리에만 1조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앞서 지난해 생산된 쌀 시장격리에 7800억 원이 쓰였다. 이와는 별도로 공공비축미 매입에도 약 1조 원이 쓰인다. 그리고 농사를 지으면 주는 ‘공익직불금’ 예산 2조3000억 원에서 70% 이상이 논에 투입된다. 결국 농식품부 예산의 상당 부분이 모두 쌀에 쓰이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먹지 않는 쌀에 왜 이런 세금이 투입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치권은 입을 다물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에서도 ‘한국 사람은 밥심’ ‘식량 주권’ 등을 내세웠다. 이 같은 외형상의 명분과 달리 보다 본질적인 부분은 가리고 있다. 민주당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지역이 바로 쌀 주산지역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논 면적이 가장 넓은 시·군 1위에서 10위 사이 중 충남 당진과 서산, 경북 경주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호남 지역이다. 쌀 농사를 짓는 농민이 많은 지역구 의원들이 당연히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정부 내부에서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호남 의원들의 압박을 견뎌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예산이 넘쳐나서 막 쓸 수 있다면 양곡관리법 할아버지라도 통과시키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걸 국회의원들이 잘 알면서도 막무가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같이 과잉생산에 대한 예산 보전은 다른 품목 작물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을 언급한다.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2021년 기준으로 국내 전체 농가 수 103만1210 가구 가운데 쌀(논벼) 생산·판매 농가 수는 38만9572 가구로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에게 농업 예산 상당 부분이 투입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은 ‘농민’이란 이름을 앞세우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먹지도 못하고 쌓아두는 쌀에 예산을 투입하는 데 대해 주요 납세자인 도시거주민들의 불만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국내에서 농촌에 사는 ‘농가인구’는 221만5498명에 불과하다. 인구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세금이 농업·농촌에 쓰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도 많다. “국가 차원에서 농업을 유지하고 농민의 윤택한 생활을 예산을 통해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쌀 격리와 같이 낭비성으로 예산이 소진된다면 농업·농촌에 대한 도시거주민들의 반감만 더 키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정부 관계자의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농업구조변화에 쓰여야 할 예산이 매년 넘쳐나는 쌀 처리에 낭비되고 있다”며 “쌀 생산 농민들도 정부 보조금·직불금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스스로 자영업자라 생각하고 책임 있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민 기자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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