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보, 그대 안의 우리, 높이 2.4m, 영주석, 완성도 45%.
장국보, 그대 안의 우리, 높이 2.4m, 영주석, 완성도 45%.
이재언 미술평론가

늘 쓰는 인칭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게 ‘우리’가 아닐까. 그만큼 한국인들의 공동체 의식은 유별나다. 유아기에 잠시 자의식이 선명했다가, 사회화와 함께 저절로 의식 중심에 자리하는 ‘우리’. 수많은 국난에 직면해서도, 때마다 잘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이것이다. 세계인들이 경이롭게 바라보는 점이기도 하다.

올해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권진규 조각가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권진규의 예술적 후사(後嗣)를 잇는 춘천은 조각의 성지와도 같다. 그의 오마주로 시작된 ‘춘천조각심포지엄’ 네 번째 잔치를 찾았다. 공개 제작 실연, 그리고 작가와 시민이 함께 완성해가는 조각의 향연에서 문제의 ‘우리’를 만난다.

조각가 장국보가 10척 높이의 바위에서 누군가를 발현해낸다. 대리석 속에 들어 있던 이를 끌어낸 것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 했지만, 작가는 훨씬 더 단단한 화강암과 싸워 ‘우리’를 캐내고 있다. 망치와 정만으로 박피(剝皮)하듯 돌을 벗겨내니 이거야말로 전설의 친견 아닌가. ‘우리’의 근성과 열정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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