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시장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재생에너지원 중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시장에서도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의 전력 운영 방식은 원자력, 화력 등의 예측 가능한 발전원을 기본으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고 관리해왔다. 그러나 태양광, 풍력과 같이 자연의 영향을 받는 에너지원 증가로 발전량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게 됐다. 수요-공급 변화 대응 역시 어려운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전력 계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일정한 주파수 유지다. 이것이 전력의 품질을 결정한다. 그런데 햇빛과 바람에 따라 전력 생산의 간헐성과 변동성이 커져 계통 운영의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계통 관리의 리스크 증가는 ‘블랙아웃’과 같은 전력 시스템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계통 안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이 특정 시간대에 높아질수록 출력 제한이 발생한다.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육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제주도는 이러한 출력 제한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계획’ 초안에 따르면, 2030년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1.5%로 예상되는데 유연성 자원의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
유연성 자원으로는 상용화된 시설 중 대표적으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양수발전을 꼽을 수 있다. 배터리 ESS가 단주기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듯이, 양수발전은 중·장주기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양수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100년 이상 운영돼 오고 있어 기술 성숙도가 가장 높아 각국의 모든 전력 계통 운영기관이 가장 선호하는 발전소이기도 하다. 국제수력협회(IHA)에 따르면, 미국·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양수 건설이 확대 추세에 있고 2030년까지 78GW의 신규 양수가 건설돼 시설 용량이 238GW로 증가할 전망이다.
2011년 순환정전 사태가 발생했을 때 블랙아웃 위기가 있었다. 당시 양수발전소는 상부댐에 저장돼 있던 물을 떨어뜨리며 즉각 전기를 생산, 전국적인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막았다.
지난 3월 울진·삼척 산불로 원전 출력 감발 시에도 계통 안정을 위해 양수발전이 긴급 투입된 바 있다. 양수발전은 원자력, 화력에 비해 초단시간(5분) 만에 전기 생산이 가능해 갑자기 전력이 부족한 위기 상황에서 비상 전력 역할을 할 수 있고 에너지 저장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수력발전이 양수발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에너지 저장 기능이 없는 수력과 대용량 에너지 저장 시설인 양수발전을 비교하는 것은 설비 특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약 9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전원인 양수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무역액이 1조 달러를 넘은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 10개국에 불과하다. 수출 위주의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돼 경제의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글로벌 추세를 감안하면 탄소 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원의 확대는 필연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저장 시설에 대한 적기 투자가 지속적으로 수반돼야 국가 경쟁력 확보와 에너지 안보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