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여야 정치권에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유행하고 있다. 진시황 사후 환관 조고가 실권을 잡아 허수아비로 옹립한 황제 호해 앞에 사슴을 끌어다 놓고 “폐하를 위해 좋은 말을 한 필 구해 바친다”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오늘날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 2000년도 더 전인 중국 전국(戰國)시대 수준보다 낫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실언을 공격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처음에 “이××라고는 했지만, ‘바이든’이라고는 하지 않고 ‘날리면’이라고 했다”고 해명했다가 나중엔 아예 “이××라고도 하지 않았다”고 원천 부인하자 “황당한 지록위마”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양두구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역공을 당하자 “지록위마 상황”이라고 했다.

최고 관직인 승상(丞相)에 오른 조고가 황제 면전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우긴 건, 호해를 농락하기 위한 목적보다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 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따라 하지 않은 양심 있는 신하들을 찾아내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무리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 우격다짐이나 이율배반, 자가당착 개념으로 지적해야 할 상황에서 지록위마라고 하는 건, 따라서 정확한 인용은 아닌 셈이다.

외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소속 국회의원 169명 전원의 이름으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김건희 특검법’ 등을 발의하는 상황을 지록위마라고 비판하기에 적절하다. 대통령의 실언을 장관에게 물어 해임건의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고, 결혼 전 일이 대다수인 대통령 부인의 사소한 의혹에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준의 거대 특검씩이나 도입하자는 데 소속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린다는 건 심한 ‘오버’고, 대단히 정략적인 행태다.

대선 패배의 최고 책임자임에도 곧바로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된 자격지심에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자신의 권력을 시험해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2024년 국회의원 선거 때 공천 학살을 우려했을 의원들이 단 한 명의 이탈도 없이 ‘말이 맞다’고 복창한 건 영악하다고 해야 하나, 가련하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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