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녀장의 시대│이슬아 지음│이야기장수
‘출판사 사장’ 딸 -‘직원’ 母父
가부장 자리에 ‘가녀장’ 앉혀
김장출장 엄마에게 특별수당
“공짜로 살림 제공 시대 지나
가족들의 위치 뒤바뀌더라도
일상 지켜내는 시대 오기를”
“늠름한 딸들이 참 많은데, 그만큼 인정은 받지 못해요. 그들을 좀 더 위풍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는, 제목부터 힘찬,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이번 소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파격적으로 보여도 들여다보면 사실 아주 온건하게 쓴, 부드러운 이야기다”라며 웃었다.
소설 속 ‘가녀장’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슬아’다. 할아버지가 중심인 전형적인 가부장 가족에서 자라난 슬아는, 20년째 보수가 제자리걸음인, 도저히 생계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글쓰기’란 노동을 통해 ‘기적적으로’ 가세를 일으키고, 출판사를 차려 ‘모부’인 ‘복희’와 ‘웅이’를 직원으로 고용한다. 가녀장이 경제권과 주도권을 쥔 집안의 풍경은 새롭고, 유쾌하다. 사소한 지적은 있으나 신랄한 비난은 없다. 인물들은 실수하고 만회하고 다시 마음을 다진다. 가부장제의 대안까지 될 수는 없으나, 그 가능성의 발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며. 작가 역시 “무수한 저항 중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좋은 팀으로 거듭나는 가족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가부장을 통렬하게 비판하거나 조롱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 그러니까 가부장이었거나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던 남자들을 욕해버리고 끝나면 너무 쉬운 선택이라 생각해요.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잖아요.”
이 작가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개인적 서사를 보편적 공감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이 시대 또래 작가 중 가장 잘 쓰고, 잘나가는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등단’이라는 기성 제도를 통하지 않고, 구독 경제를 통해 독자들과 ‘직거래’를 해 왔고, 이제는 스스로 플랫폼이자 미디어로 성장했다. 10권의 책을 냈고, 노래하고 그림도 그린다. 다재다능, 자유분방함으로 M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셀럽’이기도 한데, 그 모습이 소설 속 ‘슬아’와 겹쳐진다. ‘새 길’로 가는 문을 힘껏 열어젖힌, 그 기세가 특히. 실제로 작가는 현실의 ‘이슬아’를 ‘슬아’에게 적극적으로 투영시켰다. 할아버지가 중심인 대가족 안에서 자란 것과 글쓰기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이 차린 출판사를 엄마 아빠와 함께 꾸려가고 있는 것 등.
‘슬아’는 가정과 출판사 대부분 일에 결정권을 가졌다. 안팎으로 ‘왕’이다. 기존의 ‘당연한 것’들의 위치가 달라지며 이것이 만드는 생겨난 생경한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컨대, 실내 흡연 금지란 규칙 때문에 아빠 ‘웅이’는 마당에 나가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다. 그러나 마감의 압박에 시달릴 때 딸인 ‘슬아’는 집 안 곳곳에서 담배를 피워댄다. 이 장면이 얼핏 ‘전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답습’ 아니냐 했더니 이 작가는 “어릴 때 보던 내내 머리에 남아 있던 가족 드라마 속 장면 중 하나가 속옷 차림으로 신문을 읽으며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였다”면서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슬아’는 완벽한 가녀장, 사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권력을 쥐었고, 그걸 쓰면서 실수도 하고, 배워나가고 있어요. 다시 잘해보려고 하고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남자들에게 그 기회가 많았잖아요.”
‘슬아’에겐 기존 가부장에게서 볼 수 없는 기특한 면모도 있다. 출판사 사장으로서 모부에게 존칭을 쓸 것을 요구하지만, 공과 사를 뚜렷이 구분하고 두 사람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 ‘가족’이라고 서로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특히, ‘복희’의 살림 기술의 숙련성을 아주 높이 쳐준다. 밤늦게 부엌일을 더 해야 할 때엔 근무 외 수당을 챙겨 주고, 친정으로 ‘김장 출장’과 ‘된장 출장’을 다녀올 때도 특별 수당이 있다. 소설은 출간 전 ‘일간 이슬아’를 통해 사전 연재가 됐는데, 이때 세상의 수많은 ‘복희들’이 이 수당에 열광했다는 후문. 그들의 리뷰는 이렇다. “내가 이슬아를 낳았어야 했다.”
‘웅이’는 주로 몸 쓰는 일을 한다. 바쁜 슬아의 운전을 대신해 주고, 책꽂이도 만들고, 청소를 한다. 가부장의 권위를 내려놓은 그는 점점 ‘귀여운’ 중년 아저씨가 돼 간다. 팔에 대걸레와 청소기 문신을 할 정도로 자신의 일을 뿌듯해하는 직원이고, 노브라 차림으로 방송을 한 슬아가 고정 패널에서 잘린 날엔, 조용히 담뱃불을 붙여주는 다정한 아빠다. 이 작가는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를 지나,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빠들의 시대를 지나, 권위를 쥐어본 적 없는 딸들의 시대를 지나,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작가 ‘이슬아’를 알린 건 에세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주된 글쓰기가 언제나 소설이었으면 했다”고 고백했다. 늘 망설이며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내가 가장 잘하는 것부터 하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소설도 ‘나’로부터, 즉 ‘슬아’로부터 출발하게 된 것. 그러나 그는 “소설은 소설”이라고, “‘슬아’는 ‘이슬아’보다 훨씬 훌륭한 가녀장이다”라며 웃었다.
소설은 제목처럼 힘차지만, 함부로 도발하진 않는다. 통쾌할 때보다 다정할 때가 더 많아서다. 이 작가는 “성정상 인물들을 고난 속에 두질 못한다”고 했다. 보다 해방적이고 파격적인 이야기는 다음으로 기약하며 그는 첫 소설을 ‘따뜻하게’ 마무리했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지켜내야 하는 건 ‘일상’뿐이라고 믿어요. 달라진 위치에서, 가족들이 일상을 지켜낸 걸로 족합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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