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선우정아 ‘상상’

노영심의 자작곡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1992)는 변진섭의 ‘희망사항’(1989)에 대한 일종의 답가다. 여기엔 특이하게도 옛날 노래 제목 두 개가 등장한다. “나를 처음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던 날 어느 정류장에서 들리던 노래가 ‘목포의 눈물’인지 ‘빈대떡 신사’인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싶은데 창작자도 예상했는지 이 질문을 노래 가사 앞부분에 미리 배치해 놓았다.

개인적으로 ‘목포의 눈물’에 등장하는 섬(삼학도), 봉우리(노적봉), 산(유달산), 강(영산강) 모두 답사하고 ‘빈대떡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 맞는 속내까지도 샅샅이 안다. 가요에 관해선 백과사전이라고 나름 자부해 왔지만 어떤 노래와 가수에 관한 기억과 현실은 때로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제1회 MBC대학가요제(1977) 참가번호 4번은 대구에 소재한 효성여대 재학생(김경애)의 자작곡 ‘회심’이었다. 전주에 피리 소리가 나오는데 가사와 무관치 않다. ‘라라라 콧노래 따라 흥겹게 불던 오늘도 사랑의 피리 피리를 부네.’ 멜로디는 아름다운데 박자는 명랑함과 처량함을 넘나들고 중간에는 신파조(?)의 독백까지 들어 있다. 한마디로 다채로운 구성이다. ‘헤어짐은 만남보다 더 어려운 것인 걸 내 나이 하고도 그만큼 몰랐었음을 이제는 헤이지 않고도 안답니다.’

처음 들을 땐 가사도 목소리도 청승맞다고 느꼈는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서 지금은 아예 나의 휴대전화 플레이리스트에까지 이 노래가 올라와 있다. 실황음반이라 진행자(이수만·명현숙)와 출연자의 대화가 담긴 점도 특색 있다. “이 노래를 만든 배경이 뭔가요?” “예비고사(수능) 보름 전에 이 노래를 만들었는데 5년간 짝사랑하던 남학생이 시험 잘 보길 바라는 심정으로 만들었어요.”

이 당돌한 여학생을 45년 후 TV 아침 프로그램에서 보게 될 줄이야. 지난주(10∼14일) ‘인간극장’(KBS1TV)의 부제는 ‘지윤 씨의 두 어머니’였다. 장애를 가진 청년예술가 임지윤 씨가 미국에 거주하던 생모를 만나 열흘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양부모가 생모와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노래채집가의 눈과 귀를 끌어당긴 대목이 나왔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고 대학가요제에도 나가셨다는. 그때부터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의 귀에는 ‘회심’의 피리 소리가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자막으로 이름이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드디어 이름과 나이(김경애 65세)가 화면에 뜨는 순간 탄식과 탄성이 함께 나왔다. 세월의 무상함은 탄식으로, 기억의 비상함은 탄성으로 나왔으리라.

기억력은 과거를 되살리는 힘이고 상상력은 미래를 펼쳐내는 힘이다. 선우정아가 부른 ‘상상’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의 OST인데 이 드라마의 음악감독이 바로 ‘희망사항’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의 작사·작곡가 노영심이다. 매년 여름 평창에서 열리는 국제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은 세계 유일의 발달장애문화축제인데 그 행사에 관여한 이력이 연출자가 그를 직접 찾아 나선 계기가 됐다고 한다.

사연 없는 노래 없듯이 사연 없는 인생도 없다. 스무 살 여대생이 입양아의 생모로 나타나기까지 그 얼마나 많은 사연과 눈물이 있었겠는가. ‘세월이 그렇게 하여/ 그대마저 그렇게 하지 말기를 원했으나/ 그대 역시 세월을 사는 한 나그네임을/ 이제야 이제야 보았답니다.’(김경애 ‘회심’ 내레이션 중) 하지만 이제는 기억보다 상상이 그를 안아줄 차례다. ‘이 작은 햇살이 너를 감싸주길 바래/ 이 작은 웃음이 내 눈물 닦아 주길 바래.’(선우정아 ‘상상’ 중)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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