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19) 표현의 자유
골계로 군주 통렬하게 비판
국정개선 이끈 인물들 서술
똑같은 사물을 그렸다 해도
정신이 깃든 그림은 예술품
더구나 풍자는 자유의 소산
당시 궁정에는 선천적으로 키가 작은 광대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궁중 연회 시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했으며 재미있는 골계, 그러니까 유머를 펼쳐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종종 고관대작이나 측근조차 하지 못한 간언을 골계 속 풍자로 대신함으로써 군주의 변화를 촉발하기도 했다. 풍자가 담긴 골계의 힘이 그만큼 컸음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사기’를 집필하면서 ‘골계열전’을 따로 마련하여 골계로 군주를 통렬하게 풍자함으로써 국정 개선을 이끌어낸 인물들에 대해 서술한 것도 역사의 흐름마저 바꿀 수 있는 풍자의 큰 힘을 익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한비자’에 보면 위나라 궁중에도 그러한 광대가 있었다. 하루는 광대가 영공과 우연히 마주치자 대뜸 자신의 꿈이 맞았다고 기뻐했다. 궁금해진 영공이 무슨 꿈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광대는 간밤의 꿈속에서 부엌의 아궁이를 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군주를 뵙게 될 징조였다고 아뢰었다. 순간 영공이 발끈했다. 이유는 군주를 만나게 된 자들은 보통 태양을 보는 꿈을 꾸는데 어찌하여 보잘것없는 아궁이를 본 것을 두고 자신을 만나게 될 징조라고 했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군주답지 못한 영공이었지만 그래도 임금을 아궁이에 비유한 것은 분명 과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광대는 무척 차분했다. 화가 잔뜩 난 영공 앞에서 차분하게 왜 아궁이 꿈이 영공을 만날 징조인지를 설명했다. 그는 먼저 태양은 온 천하를 두루 비추어주는 데 비해 아궁이는 그 앞에 있는 자만 비추어줄 따름이라고 전제했다. 그런 다음 지금 임금께서는 오로지 미자하 한 사람만을 비추어주고 있으니 태양이 아니라 아궁이에 해당한다고 아뢰었다. 군주란 본디 온 나라를 두루 비추어주는 존재이므로 어떤 한 사람이 독차지할 수는 없는 법인데, 지금 그러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미자하에게 푹 빠져 정사를 게을리 한 영공을 이런 식으로 풍자했던 것이다.
풍자는 이렇게 밋밋하고 그저 그런 정도의 이야기에도 정신을 심어 준다. 정신은 그것을 품고 있는 것에 생명을, 또 그것만의 개성을 부여한다. 생명이 있기에 좀비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고, 개성이 있기에 나와 너, 그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사람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가령 똑같은 사물을 그렸다고 해도 정신이 담긴 그림은 그 사물의 복사품이 아니라 예술품이 된다. 그래서 한자권에서는 형태만 똑같이 그려낸 것이 가장 아래이고, 이에 더하여 뜻을 그려낸 것이 그다음이며, 그 위에 정신을 그려낸 것이 최상이라는 관념이 대대로 이어져 왔다.
여기서 형태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은 모방에 해당된다. 사실 그림뿐 아니라 시나 수필 같은 문학이나 음악 등도 처음 익힐 때는 좋은 작품을 흉내 내는 데서 시작한다. 예술만 그러한 게 아니다. 공자가 배우다[學]는 활동의 뜻을 ‘따라하다[效]’라고 푼 데서 알 수 있듯이 학문도, 도덕적 수양도 훌륭한 이의 학식과 윤리를 흉내 내면서 시작한다. 모방이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모방이 그저 모방에 그쳐 거기에 아무런 뜻도, 정신도 담기지 않을 때다. 그저 표절에 불과함에도 이를 창작의 소산이라고 우길 때다. 반면에 풍자가 실린 모방은 결코 표절이 될 수 없다. 모방에 뜻과 정신이 스며들어 있기에 그러하다.
게다가 풍자는 자유의 소산이다. 그래도 위나라에는 아무리 함량 미달의 군주라 할지라도 그 앞에서 대뜸 군주를 신랄하게 풍자할 수 있는 자유가 남아 있었음이다. 덕분에 광대는 풍자 섞은 골계를 늘어놓을 수 있었고 그 내용이 전적에 담겨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하여 대통령에 의해 자유가 줄곧 외쳐지는 이 시절에 고등학생의 풍자를 문제 삼는 장면이 참으로 기괴할 따름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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