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리더십 - 최홍영 BNK경남은행장
“항상 변화하라”
현장서 직원들과 비전 등 토론
복장 자율화에 호칭까지 통일
‘디지털 로컬뱅크’ 선도
엄청난 독서 기반한 전략 도출
은행권 첫 ‘AI 기반’ 담보평가
지역밀착·뚝심의 경영
소상공인 지원에 나눔 행사도
원칙 지키되 잘못된 관행 혁파
창원=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
인터넷 은행의 세력 확장과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지방은행도 위기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하고 결국 사라진다. 생존에 대한 절박함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는 지방은행장이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7번이나 완주했을 만큼 강한 뚝심과 다독으로 다져진 통찰력, 30년의 현장 경험으로 무장한 최홍영(60) BNK경남은행장이 그 주인공이다. 최 행장은 지방은행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려 시중은행이 파고들기 어려운 지역 곳곳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경남이 중심인 원전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원전산업 중소기업 금융지원단’을 출범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게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래서 지역 밀착형 ‘디지털 은행’ 전환을 선두에서 지휘하며 열정을 쏟고 있다.
◇“틀을 깨고 변화하라”=최홍영 경남은행장이 지난해 4월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본점 31개 부서를 일일이 돌며 직원들을 만나 CEO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적힌 쪽지를 받아 현장에서 답을 건넨 일이다. 20여 명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행원들과 나란히 앉아 ‘홍영이 형’이라고 불러 달라며 경남은행의 미래 비전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는 디지털 은행으로 전환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직원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소통방식의 단면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직원들이 시대의 흐름에 대응해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최 행장 자신도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입돼 경남은행에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먼저 은행장 직속의 ‘상상랩’을 출범해 빠른 의사결정 및 실행 프로세스 간소화 등 기업문화 전반을 개선해 임직원의 마인드에 변화를 가져왔다.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복장을 자율화하고 호칭도 변경했다. 최 행장은 “반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괜찮다”고 했다. 어떤 옷을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이 창의적 사고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5월에는 지방은행 최초로 부서장급을 리더로 그 외 직원을 모두 매니저로 호칭을 통일했다. 수평적인 소통을 강화해 유연한 의사결정과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최 행장은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기업문화가 피어나야 다양성이 생겨나 경남은행이 디지털 은행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로컬 뱅크’ 프런티어=최 행장은 다독가다. 즐겨 읽는 책은 역사책과 디지털 관련 도서로 그의 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곳곳에 책이 쌓여 있다. 그는 7년 전 ‘디지털뱅크, 은행의 종말을 고하다(미래의창)’를 접하고 은행원으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디지털 관련 책에 심취해 은행 내에서 따라올 직원이 없을 정도로 디지털 금융에 대한 전문가적 통찰력을 갖추게 됐다.
그 중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메가스터디북스)’은 무려 스무 번 넘게 읽어 외우다시피 했다. 최 은행장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운명과도 같은 책이다. 최 행장은 디지털 관련 서적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은행장 취임과 함께 디지털 뱅크 전환에 박차를 가하며 지방은행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다. ‘뉴 웨이브(New Wave)’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사내 디지털 인재 양성, 정보통신(IT) 및 시스템 고도화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그는 디지털혁신전략위원회도 만들어 직접 지휘하고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로봇행원 52대를 도입해 직원들이 반복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단순 업무를 대신했고, 인공지능(AI) 기반 담보평가 통합관리체계를 은행권 최초로 구축했다. 은행의 핵심 업무인 여신 업무 중에서도 난도가 높은 기업여신 심사를 지방은행 최초로 자동화했다.
최 행장은 시중은행과 차별화된 지방은행의 장점을 살려 지역민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지역 밀착형 디지털 서비스 발굴에 고심하고 있다. 그중 AI 부동산 서비스와 지역 레스토랑 예약서비스, 모바일 쿠폰 몰 등은 경남은행 모바일 앱에서 실생활에 적용 중이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지역 밀착 경영=최 행장은 지방은행만이 할 수 있는 밀착형 사업으로 경남은행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는 52년 역사의 경남은행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만큼 지역민과의 동행을 절대적으로 강조한다. 이런 그의 철학은 경남은행과 지역사회와의 관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남은행은 지난달 7일 코로나19와 태풍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전통시장 상인과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8000여 명을 창원 NC파크로 초청해 ‘경남도 소상공인 나눔프로젝트’를 열었다. 경기에 앞서 대출 직원이 던지고 가게 주인이 치는 시타·시구 이벤트도 했다. 야구장 주변에는 상인들이 음식을 들고 나와 판매하며 ‘윈윈’의 장소를 만들었다.
경남은행은 최근 경남도와 협약을 맺고 채무불이행자로 분류된 취약계층이 새 출발할 수 있도록 2024년까지 250억 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탕감해 주기로 했다. 어려운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경남신용보증재단에 100억 원가량의 출연금도 냈다. 소상공인들에게 1500억 원가량의 대출을 해줄 수 있는 규모다.
경남은행은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은 원전 협력업체에 긴급자원 지원, 금리 인하 등의 지원책도 펴고 있다. 경남은행도 사실 경남에 90여 원전 협력사가 몰려 있는 탓에 원전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사업이 재개돼 지원상품을 만들어 원전 협력사들의 재기를 돕고 있다. 지방은행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지역사회에서의 역할로 경남은행은 최근 금융위원회가 실시한 2022년 금융회사 지역재투자 평가에서 최고등급인 최우수 등급을 획득했다.
◇뚝심 리더십=최 행장의 최대 무기는 뚝심이다. 그는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원칙을 지키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행장이 된 후 경남은행의 부실이 줄어들고 이익은 높아진 이유다. 그는 부실의 원인인 학연이나 관계 등을 통한 대출 관행을 없애고 원칙을 지키도록 주문했다. 관행을 깨면서 “이럴 수 있냐”는 비난도 받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정석으로 풀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최 행장은 “힘든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가면 결과는 언제나 깔끔했다”고 말한다. 최 행장 취임 후 경남은행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도 대출이 늘어나고 이율이 높아져 얻은 성과가 아니라 부실을 줄여 얻은 결과라 의미가 크다.
최 행장의 뚝심은 그의 삶에서도 읽힌다. 경남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최 행장은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 졸업 후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1980년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학업을 포기할 수 없어 이듬해 울산대 경영학과에 진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군 제대 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장학금을 받아 학업에 전념했고, 1989년 경남은행에 대졸 사원으로 입사해 32년 만에 은행장이 되는 신화를 썼다.
최 행장의 추진력은 경남은행 울산마라톤클럽을 창단해 15년간 이끌며 풀코스를 7번 완주하고, 21개 구간 20개 읍면을 지나는 지리산 둘레길을 1년 6개월 만에 완주한 강한 끈기와 집념에서 찾을 수 있다.
“100년 전통 마산용마고는 내 인생의 달”… 최 행장이 리더십 배운 모교
경남은행장 14명중 5명 배출
씨름선수 이만기·강호동 등
문화·예술·재계 수많은 리더
최홍영 BNK경남은행장의 리더십은 모교인 100년 전통의 마산용마고(옛 마산상고)에서 출발한다.
마산용마고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마산공립상업학교로 개교해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1951년 마산상고로, 2001년 인문계인 지금의 마산용마고로 교명과 학제가 변경됐다. 100년간 전체 졸업생만 3만2590명에 이르는 등 재계와 문화·예술·체육계의 수많은 리더를 배출했다.
주요 인사는 경남은행만 보더라도 1970년 문을 연 뒤 현재까지 14명의 은행장 중 초대 행장인 최희열 행장을 포함해 총 5명을 배출했다. 이는 용마고와 인접한 창원시 마산회원구 경남은행 본점에 많은 동문이 지점장급 이상의 자리에 포진한 데도 찾을 수 있다.
경남은행 밖으로 눈을 돌리면 용마고 역사에서 자신과 가족을 넘어 세상의 정의를 위해 희생한 리더가 많다. 대표적인 인물로 농촌 계몽운동에 혼신을 바친 강성갑(6회). ‘고향의 봄’ 작사가이자 아동문학의 선구자 이원수(7회), 벽산그룹 창업자 김인득(10회), 고려제강 창업자 홍종열(12회), 한국 야구의 세계화에 앞장선 야구 국가대표 감독 김계현(16회), 제6대 해병대 사령관 공정식(18회), 7선 국회의원 황낙주(23회),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의거의 횃불 김주열(37회), 1970년대 씨름판을 평정한 김성률(40회) 등이다. 활동 중인 인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주심을 맡았던 주선회(39회), 씨름인 이승삼(54회),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이만기(56회), 강호동(63회), 산악인 안치영(70회) 등이 있다.
55회 졸업생인 최 행장은 용마고를 ‘내 인생의 달’이라고 강조한다. 그만큼 학교와 선배들이 그의 삶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다. 최 행장은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지 않지만 힘들 때 발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보면 달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해준다”며 “용마고는 제 삶의 어려웠던 순간순간 따듯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는 인생의 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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