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무역수지 이어 경상수지 적자
과정과 내용 따라 선악 갈림길
60~70년대 적자에도 고도성장

생산적 투자 경우엔 ‘좋은 적자’
방만 재정과 잘못된 소비 심각
노동.규제 개혁과 감세 나설 때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데도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경상수지마저 지난 8월에 30억 달러 적자로 돌아서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의 배경에는, 무조건 경상수지 적자는 경제에 나쁘고 경상수지 흑자는 좋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 적자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경상수지는 외국과의 상품 및 서비스의 거래와 외국에 투자한 대가로 벌어들이는 배당금과 이자 같은 소득 거래 등을 합산해서 계산한다. 무역수지는 경상수지의 상품수지와 비슷하지만, 무역수지는 통관 기준으로, 상품수지는 통관한 다음 수입자에게 전달되는 비용까지 포함하는 인도 기준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두 지표 간에 약간의 액수 차이가 있다. 배당·이자 등의 소득 거래가 경상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는 대부분 상품과 서비스 수지에서 결정된다. 재화와 서비스를 외국에 팔아서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돈이 외국의 재화와 서비스에 지급한 돈보다 많으면 경상수지는 흑자를, 그 반대인 경우 적자를 기록한다.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고 적자는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은 경상수지 적자가 GDP를 줄이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GDP는 민간소비, 민간투자, 정부 지출 그리고 순수출을 합한 것으로 돼 있다. 순수출은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으로, 수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경상수지 흑자가 되고, 수입이 수출보다 많으면 경상수지 적자가 된다. 경상수지 적자가 되면 순수출이 음(-)이 돼 GDP를 줄이는 것으로 보이는 오해가 생긴다. 그러나 수입액을 빼는 이유는 이미 그 금액이 민간 소비에 포함돼 있어 중복 계산을 피하기 위함이다. GDP 측정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면 경상수지 적자 자체는 GDP의 증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의 고도성장 기간에 경상수지가 1960∼1970년대에는 만성적인 적자, 1980년대 후반에는 흑자를 기록했던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경상수지 적자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상수지 적자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경상수지 적자와 연관돼 있는 과정을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 경상수지 적자는 외국으로부터의 자본 유입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보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나라에 석유를 팔면 (사우디가)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의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자산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지만 자금 유입이 발생한다. 이 유입된 자본이 국내에서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는 경제에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개인이 자금을 차입해 그것을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하면 좋고 과도한 소비나 잘못된 투자에 사용하면 나쁜 것과 마찬가지로, 경상수지 적자에 따른 자본 유입이 생산 능력을 증가시키는 투자에 사용되는 경우 경상수지 적자는 경제에 좋은 것이고, 과도한 소비와 잘못된 투자에 사용되면 나쁜 것이다. 과도한 소비나 잘못된 투자는 경직적인 경제 구조, 그리고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잘 알다시피 우리의 노동시장은 지나치게 경직적이고 기업에 대한 규제가 대단히 심하다. 게다가 지난 수년 동안 방만한 재정적자와 저금리 정책을 시행했고 징벌적인 세금을 부과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잘못된 소비와 투자가 초래됐을 뿐만 아니라, 생산 능력을 증가시키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이런 까닭에 근본적인 문제는 경상수지 적자 그 자체가 아니라,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과다한 기업 규제 및 방만한 재정·통화정책 그리고 징벌적인 세금에 있다.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 활성화를 통해 우리의 경제를 위기에서 구하는 방법은,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개혁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의 혁신 활동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금과 정부 지출을 줄이고 화폐 가치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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