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어질 결심’ ‘작은 아씨들’ 작가 정서경
작품속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
항상 ‘힘들고 고단한 삶’ 설정
“인간은 고통속에서 자신 발견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
다음 작품선 남자이야기 꿈꿔
“두 아들 통해 남자 심리 배워”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아가씨’를 거쳐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과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까지, 왜 정서경 작가가 쓰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은 항상 고단할까? ‘작은 아씨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무일푼의 어린 세 자매가 700억 원이라는 돈을 갖게 되는 험난한 여정을 그렸다. 그 과정에는 죽음과 폭력이 난무한다. 고난의 연속이다. 정 작가의 전작 속 인물들도 하나같이 평지풍파를 겪었다.
18일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의외로 쉽게 답했다. “고난이 없으면 2시간을 못 채워요.” 고난의 서사가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설명이다. 다행히 정 작가가 제시하는 고난의 결말은 항상 발전적 방향으로 흐른다. 그는 “‘작은 아씨들’에서 주인공 인주(김고은 분)가 고통받는 3부와 11부를 특히 좋아한다”면서 “인간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여성 캐릭터를 구축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작은 아씨들’의 경우 작가, 감독, 주인공이 모두 여성인 소위 ‘F(Female) 등급’ 작품이다. 그렇다고 젠더 이슈를 부각시키려는 설정은 아니다. “내가 여성이고, 여성의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운을 뗀 정 작가는 “제가 생각할 때 젠더는 굉장히 강력하게 밑바닥에 깔린 정서다. 노력으로 넘기 힘들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성 캐릭터를 잘 쓰고 싶었는데 그걸 넘지 못해 여성 이야기를 주로 쓴다”면서 “다만, 여성 서사는 오밀조밀 귀엽고 힐링된다는 이미지는 배반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작은 아씨들’ 속 인물들을 춤추게 하는 동력은 700억 원이라는 비자금이다. 3년 전 집필을 시작할 때는 그 금액의 크기가 300억 원이었고, 인주가 선물받은 가방에 담긴 돈은 아파트 한 채 값인 10억 원이었다. 하지만 그사이 부동산과 가상화폐 광풍이 불며 돈의 크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달라졌다. 그래서 각각 700억 원, 20억 원으로 덩치를 키웠다. “가난은 겨울옷에서 티가 난다” “가난하게 컸어? 하도 잘 참아서” 등의 대사에서는 돈과 가난을 재단하는 정 작가의 깊이가 느껴졌다. 왜 돈이 화두였을까?
정 작가는 “요즘 만나면 ‘주식 올랐어?’ ‘코인 해?’와 같이 다들 돈 얘기를 한다. 그래서 ‘작은 아씨들’ 속 모든 인물도 돈에 집착한다”면서 “극중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들이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됐고 죽게 됐는지 모르는 것처럼, 세 자매의 삶도 가난한 부모가 만들어놓은 전쟁 같은 삶 속에서 하루하루 가난과 싸운다고 생각했다. 결국 가난 역시 역사의 산물이다. 그래서 돈과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올해 ‘헤어질 결심’에 이어 ‘작은 아씨들’로 국경을 넘어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거듭났다. ‘헤어질 결심’은 내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 후보로 손꼽힌다. 정 작가는 들뜨기보다는 오늘도 어제같이 눈을 뜨면 그저 글을 쓰고 있다. 이런 패턴에 대해 그는 “직업 정신”이라 말했다. “자기 전에 ‘내일 뭘 쓸까’ 생각하고, 눈 뜨면 ‘오늘 뭘 쓰지’ 고민한다”는 정 작가는 “되도록 생각 않고 그냥 쓴다. 생각이 많아지면 안 쓸 이유부터 찾는다. 그저 쓰는 게 내 직업”이라고 선선히 말했다.
그럼 다음 행보로 정 작가는 무엇을 쓰려 할까? 그는 남자 이야기를 잘 쓰길 꿈꾼다. ‘헤어질 결심’에서 박찬욱 감독이 해준의 “내가 만만합니까?”를 쓰면, 정 작가는 서래의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를 썼다. 아직은 남자의 감정을 온전히 알기 어려운 탓에 역할을 나눴다고 엄살을 부린다. 요즘 두 아들을 통해 남자의 심리를 배워가고 있다는 정 작가는 “큰 아이가 중2다.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이제 열다섯 살까지의 감정은 알 것 같다”며 “몇 년만 더 키우면 스무 살 남자의 이야기까지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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