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우리나라는 철강, 화학,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부터 스마트폰,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부문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산업 강국이라는 국민적 자부심이 큰 가운데, 지난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는 큰 충격이었다. 반도체 산업에서 시작해 전 국가적 총력 대응 과정을 거치며 소재·부품·장비를 일컫는 ‘소부장’이란 말은 이제 산업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친숙해졌다. 지난 3년간 소부장 부문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갈 길이 멀기만 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일본 수출 규제 3대 품목인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를 보면 그간 기술 개발과 수입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그럼 ‘왜 수출 규제 이전에는 일본 의존도가 높았나?’ ‘비교적 짧은 기간에 기술 개발을 이루어낸 해법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의 산업 강국 신화는 대부분 자동차, 스마트폰과 같은 최종 완성품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소부장은 고도 기술이나 원가 경쟁력을 이유로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한 해외 조달인 경우가 많았다. 일본 수출 규제, 코로나19, 미국-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단절되거나 분절화되면서 ‘소부장 해외 조달-완성품 국내 생산’ 모델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핵심 전략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소부장 완결성을 갖춰나가지 못한다면 우리 산업의 미래 발전은 고사하고 당장의 기업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부장 기술 개발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해법은 최종 완성품을 만드는 수요기업과 소부장에 특화된 공급기업 간 ‘협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수출 규제 이전에도 불화수소를 생산할 기술력 있는 업체는 국내에 있었지만 이를 실증할 기회가 없어 제품화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수요기업과 협업이 이뤄지자 비교적 단기간에 소재 개발에 성공해 납품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수요-공급기업 간 모범적 협력 사례를 발굴하고 확산하며 소부장 협력 모델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들이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산업 현장의 수요(니즈)를 반영한 개선 방향에 맞춰 소부장 협력 모델 연구·개발(R&D) 사업의 공개 모집이 진행되고 있다.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이 활성화돼 글로벌 공급망 단절 위험으로부터 우리 기업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고 소부장 기업이 혁신 성장과 산업 대전환의 주역으로 나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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