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조선 시대 궁중회화 중에 18세기 후반 정조(正祖) 연간에 처음 그려지기 시작한 흥미로운 주제의 그림이 있는데 바로 왕회도(王會圖)다. ‘왕회’는 천하가 태평하던 중국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 국내외의 사신들이 참가한 성주대회(成周大會)를 일컫는다. 중국풍의 궁궐 정전에 앉아 있는 군주에게 이국적인 차림새의 사신들이 기이한 자국의 특산품을 공물로 바치는 행렬을 장대하게 표현했다. 왕회도는 다른 종류의 궁중회화와 달리 민간으로 확산된 주제의 그림이 아니었으므로 남아 있는 숫자가 많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현재 국내외에 10여 점이 병풍 그림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동 경로를 자세하게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그중에 절반 정도는 국외에 소장돼 있다. 런던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왕회도’(사진) 10폭 병풍도 그중 하나다. 2000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것을 한광호구입기금(Hahn Kwang-Ho Purchase Fund)에 의해 소장하게 됐다.
세로 145.7㎝, 가로 355.2㎝에 이르는 대형 화면은 대각선 방향으로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이끈다. 사신들은 화면 왼쪽 아래의 궁궐 정문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면 정문을 통과한 뒤 중층의 월대를 올라 오른쪽 위 건물 안에 앉은 군주, 즉 성군(聖君)을 비로소 알현하게 되는 이야기 구성이다. 태평성세를 상징하는 갖가지 길상물(吉祥物)로 가득한 공간에서 온 세계 사람들이 만나 서로 예를 갖추는 모습인데, 그 배경에는 성군의 존재가 있다. 다시 말해, 왕회도 병풍이 드러내고자 한 표상은 이상적인 정치 공간인 것이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