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예산 심의는 법률 제·개정과 함께 가장 중요한 책무에 속한다. 그래서 매년 9월 다음 해 예산 편성안 제출에 즈음해 대통령은 국회에서 이를 설명하는 시정연설을 하고, 국회와 납세자인 국민은 경청한다. 헌법이 대통령의 국회 발언권(제81조)을 보장하고, 국회법 역시 대통령 요구에 의한 본회의 소집 의무(제8조)를 규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거부하더라도 본회의 출석 설명을 요구하는 게 정상이다. 특히 내년 예산안은 윤석열 정부로의 정권 교체 이후 첫 예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윤 대통령에게 “국회 무시, 야당 탄압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조차 없다면 시정연설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실력 저지까지 시사한 발언이다. ‘국회 무시’는 윤 대통령의 뉴욕 발언 소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방송의 자막까지 동원한 무리한 보도였고, 야당과 국회를 모욕했다고 보기 힘든 정황이 이미 드러났다. ‘야당 탄압’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무실 압수수색을 지목한 것인데, 법원이 발부한 영장 집행을 야당 탄압이라며 거부한다면 법치 거부와 다름없다. 더욱이 김 부원장이 구속영장 실질심사까지 거쳐 이미 구속이 집행된 상태다.
이러는 배경엔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에 대한 방탄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특검 수사’를 주장했고, 24일에는 “(내일이) 대통령 시정연설인데, 오늘 (김 부원장 사무실) 압수수색을 강행하겠다는 데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좀 어렵다”고 했다. 본말전도의 억지다. 정상적 압수수색을 막아놓고, 이제 와서 시정연설 전날 압수수색을 내세워 또 반발한다. 민주당 의원 일부는 지난 22일 ‘윤석열 정부 퇴진’을 외치는 서울 도심 집회에도 참석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그래도 최소한의 공당(公黨) 모습이나마 유지하려면 이 대표 개인 비위와 민주당 책무를 전면 분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