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연설문(1967)과 기고문(1983) 두 편을 묶은 책이다. 무려 55년 전에 한 말과, 39년 전에 쓴 글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하기 직전 쿤데라는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작가 대회 당시 조국의 문화가 정치 체제라는 벽에 부딪혀 쇠락할 것을 예감했고, 그 근원인 스탈린주의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기념비적인 연설 ‘문학과 약소민족들’이다. 체코의 정치학자 자크 루프니크는 쿤데라의 문제의식에 대해 “20세기 후반 거대한 통합주의적 관점에서 약소민족들의 운명이라는 차원을 전망할 때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울림을 지닌다”고 평했다.
1983년 발표 후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납치된 서유럽’은 체코를 포함한 중앙 유럽 약소국들의 비극적 처지가 서유럽에 의해 추동됐다는 인식의 확장이다. 이 작은 나라들은 서유럽과 문화적 맥락을 같이하면서도 늘 소멸의 위기에 시달린다. 그는 중앙 유럽이 정체성을 잃으면 결국 서구 세계마저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또 호소한다.
두 편의 에세이는 지난해 11월 프랑스 갈리마르 ‘데바 총서’로 출간됐다. 몇 개월 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났고, 다시 화제가 됐다. 격동하는 21세기 유럽 정세를 예견한 거장의 눈을 확인하며, 동시에 쿤데라의 문학 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84쪽,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