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뇌(뇌 오가노이드)로 살아있는 사람의 뇌 근접 연구 가능
알츠하이머병 규명할 수 있는 기초 뇌 연구의 산업 연계 필요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선웅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 책 제목이다. 뇌를 만든다? 야구공보다 조금 더 큰 회색의 연질 덩어리. 육체와 정신을 분리할 때 정신이 사는 곳이라 흔히 여기는 뇌를 인간이 감히 제작한다고? 이게 가능한 일일까. 한국과학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아 그와 저서에 관한 와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달 초 서울에서 선 교수와 만나 뇌를 만드는 방법, 그 의미와 전망 등을 들어보았다.
―뇌를 만든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살아있는 뇌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기는 현행 법과 윤리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실제 뇌보다 훨씬 작은 지름 1~5mm 정도의 미니 뇌를 배양시켜 약물 테스트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인공적으로 제작한 유사 뇌란 의미에서 ‘뇌 오가노이드(organoid)’라고 정식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보통 ‘미니 브레인’으로 통칭합니다.”
―이렇게 작은 뇌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의 수정란에서 세포 분화를 통해 태아가 자라나듯, 발생학적인 테크닉을 활용해 실험실 배양액 안에서 키우는 것입니다. 나중에 어떤 장기로도 변할 수 있는(다분화능) 배아줄기세포에 뇌로 성장할 수 있는 적절한 유도 인자를 처리해주면 자기 조직화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형성돼 갑니다. 물론 이건 최소한의 원리만 설명한 겁니다.”
최초의 미니 브레인 제작에 성공한 사람은 2005년 미니 대뇌를 만든 일본의 사사이 요시키 교수팀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뇌 말고도 미니 눈 등 여러 가지 장기 제작에 도전했다. 이후 다른 방법 몇 가지가 추가됐지만 대체로 줄기세포에 뇌 발생을 유도하는 인자를 주입해 뇌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인다.
―그런데 도대체 미니 뇌는 왜 만드는 것인가요.
“과학자들은 궁금합니다. 뇌가 어떻게 생기고 작동하는지, 그리고 시들어가는지 등 모든 걸 말입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해부해서 직접 연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가장 근접하고 유사한 대체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인간의 뇌에 작용할 신약을 개발할 때 미니 뇌를 실험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뇌는 생물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이기 때문에 겹겹의 자연적 보호장치들이 둘러싸고 있다. 우선 단단한 뼈로 제일 바깥쪽을 보호한 뒤, 뇌막이란 얇은 3겹의 포장재가 겉을 감싸고 있다. 혈관이나 림프관처럼 뇌에 산소와 영양, 노폐물을 싣고 나르는 통로들이 모두 뇌막에 분포한다. 마지막으로 혈관뇌장벽(Blood Brain Barrier·BBB)이라고 불리는 화학적 관문이 존재한다. 미세한 박테리아는 물론 덩어리가 큰 화학 물질까지 모두 걸러내서 뇌에 악영향을 미칠 분자 단위의 유해요소까지 차단하는 ‘뇌의 친위대’이다. 문제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뇌색전증처럼 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들이 투여하는 약물이 이들 장벽에 막혀 원하는 부위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BBB를 통과하는 신약 개발은 전 세계 대형 제약회사들의 큰 숙제이다.
―좀 더 정밀한 미니 뇌를 만들기 위해 남은 과제는 무엇입니까.
“알츠하이머병 등 뇌가 늙어가면서 생기는 질병을 연구하려면 나이가 든 미니 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미니 뇌는 1년 정도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게 거의 한계입니다. 만약 50, 60대의 뇌와 유사한 미니 뇌를 만들 수 있다면 뇌 노화에 대한 연구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고장 난 뇌 부위 대신 이식할 수 있는 미니 뇌를 만들 수 있느냐 하는 연구입니다.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여러 연구자들이 희망을 갖고 일부 이식이라도 해보자 해서 시도 중입니다. 미니 뇌를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처럼 표준화된 플랫폼이 값싸게 공급되는 혁신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윤리적인 이슈 또한 존재합니다. 최근 연구에서 미니 뇌에서도 미숙아의 뇌파 비슷한 신호가 검출됐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인공적으로 성장시킨 좁쌀 크기의 뇌라 해도 살아있는 장기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지요. 이 역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 확정이 필요한 숙의 대상이라고 봅니다.”
선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아직 미니 뇌의 제작은 연구자별로, 실험실별로 천차만별이다. 좋은 성과들이 드문드문 나오지만 누구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표준화하는 과정이 절대 필요하다. 산업화 이전의 단계에서 거쳐야 할 단계”라며 “기초연구가 산업으로 연결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알츠하이머병 규명할 수 있는 기초 뇌 연구의 산업 연계 필요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선웅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 책 제목이다. 뇌를 만든다? 야구공보다 조금 더 큰 회색의 연질 덩어리. 육체와 정신을 분리할 때 정신이 사는 곳이라 흔히 여기는 뇌를 인간이 감히 제작한다고? 이게 가능한 일일까. 한국과학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아 그와 저서에 관한 와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달 초 서울에서 선 교수와 만나 뇌를 만드는 방법, 그 의미와 전망 등을 들어보았다.
―뇌를 만든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살아있는 뇌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기는 현행 법과 윤리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실제 뇌보다 훨씬 작은 지름 1~5mm 정도의 미니 뇌를 배양시켜 약물 테스트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인공적으로 제작한 유사 뇌란 의미에서 ‘뇌 오가노이드(organoid)’라고 정식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보통 ‘미니 브레인’으로 통칭합니다.”
―이렇게 작은 뇌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의 수정란에서 세포 분화를 통해 태아가 자라나듯, 발생학적인 테크닉을 활용해 실험실 배양액 안에서 키우는 것입니다. 나중에 어떤 장기로도 변할 수 있는(다분화능) 배아줄기세포에 뇌로 성장할 수 있는 적절한 유도 인자를 처리해주면 자기 조직화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형성돼 갑니다. 물론 이건 최소한의 원리만 설명한 겁니다.”
최초의 미니 브레인 제작에 성공한 사람은 2005년 미니 대뇌를 만든 일본의 사사이 요시키 교수팀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뇌 말고도 미니 눈 등 여러 가지 장기 제작에 도전했다. 이후 다른 방법 몇 가지가 추가됐지만 대체로 줄기세포에 뇌 발생을 유도하는 인자를 주입해 뇌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인다.
―그런데 도대체 미니 뇌는 왜 만드는 것인가요.
“과학자들은 궁금합니다. 뇌가 어떻게 생기고 작동하는지, 그리고 시들어가는지 등 모든 걸 말입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해부해서 직접 연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가장 근접하고 유사한 대체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인간의 뇌에 작용할 신약을 개발할 때 미니 뇌를 실험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뇌는 생물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이기 때문에 겹겹의 자연적 보호장치들이 둘러싸고 있다. 우선 단단한 뼈로 제일 바깥쪽을 보호한 뒤, 뇌막이란 얇은 3겹의 포장재가 겉을 감싸고 있다. 혈관이나 림프관처럼 뇌에 산소와 영양, 노폐물을 싣고 나르는 통로들이 모두 뇌막에 분포한다. 마지막으로 혈관뇌장벽(Blood Brain Barrier·BBB)이라고 불리는 화학적 관문이 존재한다. 미세한 박테리아는 물론 덩어리가 큰 화학 물질까지 모두 걸러내서 뇌에 악영향을 미칠 분자 단위의 유해요소까지 차단하는 ‘뇌의 친위대’이다. 문제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뇌색전증처럼 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들이 투여하는 약물이 이들 장벽에 막혀 원하는 부위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BBB를 통과하는 신약 개발은 전 세계 대형 제약회사들의 큰 숙제이다.
―좀 더 정밀한 미니 뇌를 만들기 위해 남은 과제는 무엇입니까.
“알츠하이머병 등 뇌가 늙어가면서 생기는 질병을 연구하려면 나이가 든 미니 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미니 뇌는 1년 정도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게 거의 한계입니다. 만약 50, 60대의 뇌와 유사한 미니 뇌를 만들 수 있다면 뇌 노화에 대한 연구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고장 난 뇌 부위 대신 이식할 수 있는 미니 뇌를 만들 수 있느냐 하는 연구입니다.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여러 연구자들이 희망을 갖고 일부 이식이라도 해보자 해서 시도 중입니다. 미니 뇌를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처럼 표준화된 플랫폼이 값싸게 공급되는 혁신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윤리적인 이슈 또한 존재합니다. 최근 연구에서 미니 뇌에서도 미숙아의 뇌파 비슷한 신호가 검출됐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인공적으로 성장시킨 좁쌀 크기의 뇌라 해도 살아있는 장기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지요. 이 역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 확정이 필요한 숙의 대상이라고 봅니다.”
선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아직 미니 뇌의 제작은 연구자별로, 실험실별로 천차만별이다. 좋은 성과들이 드문드문 나오지만 누구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표준화하는 과정이 절대 필요하다. 산업화 이전의 단계에서 거쳐야 할 단계”라며 “기초연구가 산업으로 연결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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