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이찬혁 ‘파노라마’
명함은 없지만 음악동네 동장이라 칭하다 보니 이런저런 민원도 받는다. 며칠 전엔 친구 승일이가 안부도 생략한 채 질문부터 퍼부었다. “옛날 TV 광고에 나온 노랜데 가사에 아빠하고 나하고 바다로 걸어갔다… 이 노래 제목이 뭐야.” 바로 정답을 맞히면 신뢰도가 한 단계 올라갔을 텐데 솔직히 그 정도로는 감 잡기가 어려웠다. “일단 접수할게.” 그런데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잠시 후 기쁨의 문자가 왔다. “찾았어. 제목은 ‘Ships’ 가수는 배리 매닐로.” 그제야 되물었다. “갑자기 그렇게 궁금했던 이유가 뭐야.” “모르겠어. 불현듯 그 장면이 기억에서 뱅뱅 도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고. 지금은 신대륙 발견한 기분.”
이참에 나도 배리 매닐로(1943년생)의 바다로 산책을 나가본다. ‘We walked to the sea, just my father and me.’ 처음엔 노래에 빠지고 중간엔 바다에 빠지고 나중엔 슬픔에 빠졌다. ‘우리는 밤을 지나가는 두 척의 배일 뿐.’(We’re just two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이윽고 노래가 닻을 내린다. ‘우린 여전히 여기 있지. 그냥 눈에 보이지 않을 뿐.’(We’re still here, it’s just that we’re out of sight)
슬픔(哀)과 죽음(悼)이 만나면 애도(哀悼)가 된다. 지난주 국가 애도 기간엔 유난히 신청곡이 많았다. 들려달라는 게 아니라 들어달라는 것이다. 국화꽃 사진과 함께 ‘못다 핀 꽃 한 송이’(원곡 김수철)를 보내온 지인도 있었다. ‘함께 울어주던 새도 지쳐 어디론가 떠나간 뒤/ 님 떠난 그 자리에 두고두고 못다 핀 꽃 한 송이 피우리라.’ 음악동네엔 아직도 ‘못다 한 노래’(원곡 양희은)가 수북하다. ‘작은 슬픔으론 감싸 안을 수 없어/ 부르지 못한 노래가 남아있네/ 못다 한 노래가 남아있네.’ 위로의 대열에 임영웅도 빠질 리 없다. ‘너를 위해 해줄 것이 하나 없어서 보낼 수밖에 없었고/ 네가 없이 사는 법을 알지 못해서 순간순간을 울었다.’(‘다시 만날 수 있을까’ 중)
음악동네 주민 중엔 고등학생도 많다. 부산 금정고에 재학 중인 준영이는 이찬혁의 솔로 데뷔곡 ‘파노라마’를 올렸다. ‘난 분명 걷고 있었는데/ 마지막 기억이/ 한마디 뱉어야 하는데/ 심장이 점점 굳어가고 (중략)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사이사이에 무거운 단어들이 매복해 있다. ‘악몽 사망선고 짧은 인생….’ 나도 대학 시절 죽음에 가까이 갔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학과회식을 마치고 귀가 중에 노래하며 걷다가 발을 헛디뎌 개천에 빠진 것이다. 순식간에 물이 몸을 덮쳤고 나는 나의 짧은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목격했다. 미운 사람, 억울한 순간들은 떠오르지 않고 고마운 사람들, 감사의 시간들이 스타카토처럼 쉭쉭 지나갔다. 다행히 골든타임 안에 구조됐지만 기억은 냄새만큼이나 오래갔다.
유재석과의 만남(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021. 12. 8 방송)에서 동생(수현)이 ‘오빠가 위인전에 실리고 싶어 한다’고 폭로(?)하자 찬혁은 솔직히 인정했다. 위인전의 마지막 문장이 뭐였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도 그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인기만 노리고 노래하면 음악동네 위인이 못 된다. 즐기면서 세상을 바꾸는 악동뮤지션으로 살다 보면 굳이 어디 있을지 고민 안 해도 된다. 누군가의 바다에서 그의 노래가 항해 중일 터이기 때문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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