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대만 특유의 반도체 특화 전략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를 앞세워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지키는 이른바 ‘실리콘 방패’ 전략이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될수록 반도체 대국인 대만의 가치가 더욱 돋보인다. 대만 정부는 영향력을 더 키우려고 자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더 짓고 있다. 북부∼서부∼남부 일대 반도체 벨트에만 20개 공장을 건설 중이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예우도 남다르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대표적이다. 오는 18∼19일 태국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 회사 모리스 창(91) 창립자가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대신해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것도 벌써 5년째다. 중국에서 총통의 참석을 반대하는 이유도 있지만, 민간 기업인이 국제 정상회의에 대참하는 것은 웬만한 나라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이 회사의 위상은 최근 미국·일본·독일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을 놓고 대만 정치권에서 안보 불안 논란까지 빚어진 데서도 확인된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다.

지난해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 점유율은 무려 53%였다. UMC 등 다른 대만 업체까지 합치면 64%나 돼 한국(18%), 중국(7%)을 압도한다. 건설 중인 공장들이 완공되면 파워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중국이 정치·외교적으로 대만을 압박해도, 반도체에 관한 한, 의존을 피할 수 없다. 중국의 지난해 반도체 수입 가운데 TSMC 등 대만 비중이 30%를 넘는다.

대만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미국의 무기가 아니라 반도체 공장”이라는 목소리가 높은 게 단지 허세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이마누엘 칸트가 명저 ‘영구평화론’에서 상호 긴밀하게 얽혀 있는 국가 간에는 서로 피해를 입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설파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더구나 지금은 전 세계가 연결돼 있다. 중국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를 잘 보고 있을 것이다. 대만에서 반도체는 경제를 넘어 안보도 지킨다. 경제와 안보가 한 몸인 것이 시대 흐름이다. 초격차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있는 게 미사일보다 안보를 더 튼튼히 만들 수 있다. 한국도 삼성·현대차·SK·LG 같은 글로벌 기업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중한지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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