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의 서재
이들의 알 수 없는 무력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설이 이기호의 ‘눈감지 마라’(마음산책)다. 광주대 교수인 저자의 주변 경험이 소상히 묻어있는 소설로 시작은 지방 사립대를 졸업하고 방을 빼서 도시로 나가려는 두 청년의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단출한 살림을 이고 지고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래도 일자리가 있는 도시 변두리의 아주 싼 숙소를 구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나간다. 사회로 나온 이들의 어깨 위에는 학자금 대출금이 얹혀져 있고, 양쪽 부모는 자기 앞가림에 바빠 도울 여력이 없다. 든든한 연줄이 될 선배나 친구도 없는 지방 사립대 졸업생에게 정규직 취업은커녕 출장 뷔페, 공장, 편의점 알바 자리만 던져진다. 겨우 하루를 살아나갈 뿐 어떤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가질 실마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아주 작더라도 성공과 성취의 경험이 자존감을 다지고, 위기의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데 이들에게는 오직 삶의 고단함과 실패와 궁지의 공간만 보인다.
그래도 둘이 버티니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주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 견디기 힘들어진다.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온 정용의 눈앞에 룸메이트 진만이 무심하게 다 써버린 로션통을 던지면서 감정을 표현하고 싶지만 그런 자신이 싫어서 멈춘다. 가난한 사람이 화를 더 내는 이유는 피곤해서라고 자조하면서. 이렇게 아슬아슬하던 두 사람은 컴퓨터를 끄지 않고 둔 것으로, 허기가 져서 찬장에 사다 놓은 신라면 블랙 컵라면을 뒤지지만 이미 친구가 먹은 것으로 끝장이 난다. 사소해 보이는 조각돌이 균열을 만든다. 그만큼 허약해진 것이다. 소설은 마치 다큐멘터리 르포 같다.
감정을 자극하는 사건이나 엄청난 갈등이 유발되지 않는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런데 울림이 있다. 왜 이 청년들이 그렇게 무력해졌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소설의 구조와 흐름이 더 잘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어느 한쪽에는 희망을 가질 여유도 없고, 살기 위해 너무 피곤해서 친절해질 수 없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SNS에 올릴 것도 없어 눈에 띄지 않으니 존재가 잘 보이지 않는 이 친구들에게 던져진 삶의 무게를 눈감지 말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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