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22일 대법원장 퇴임식 당시의 윤관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9년 9월 22일 대법원장 퇴임식 당시의 윤관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3∼1999년 대법원장 역임…향년 87세
임기 막바지엔 일선 법원 ‘법조비리’ 악재도



구속영장 발부 전 판사가 직접 피의자를 심문하는 구속영장심사를 도입하는 등 사법개혁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 윤관 전 대법원장이 1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원장은 이날 별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다. 193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윤 전 원장은 광주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2년 법조계에 입문했다.

법관 임용 후 서울민사지법·형사지법·광주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청주·전주지법원장 등을 거쳐 1988년 대법관이 됐다. 1989∼1993년 제9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1993~1999년 제1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법조계에서는 윤 전 원장의 대법원장 재임기간 6년을 ‘사법제도의 지각변동’ 시기로 평가한다. 윤 전 원장의 취임 첫해에 구성된 사법제도발전위원회가 이 같은 사법개혁을 주도한 것으로 꼽힌다. 위원회에는 법조계, 학계, 정치권, 언론계, 시민단체 인사 등 32명이 참여했는데, 윤 전 원장은 인권변호사들도 위원으로 들어오게 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도 했다.

그가 주도한 개혁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은 1997년 시행된 구속영장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제도의 도입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판사는 수사기록만 보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했다. 수사를 받게 된 피의자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수사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는 영장 발부 과정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우선 구속부터 한 뒤 추가 수사를 하던 수사기관의 관행도 이 같은 제도 도입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검찰은 피의자 신병 확보가 어려워진다며 제도 도입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지만 윤 전 원장은 도입을 강행했다.

1996년 15만4435건에 달하던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구속영장심사 도입 후 꾸준히 줄어 지난해에는 2만1988건을 기록했다. 영장 발부율도 같은 기간 92.6%에서 82.0%로 떨어졌다.

윤 전 원장 재임 시기에는 서울민사·형사지법을 통합한 서울중앙지법 출범(1995년)이나 특허법원·행정법원 신설(1998년) 등 법원 조직에도 변화가 있었다. 또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실 설치, 사법보좌관 제도 시행, 법관평가제도 도입 같은 제도도 윤 전 원장 시절에 이뤄졌다.

다만 임기 막바지까지 제도 개선 노력을 계속했지만 1998∼1999년 의정부·대전에서 법조 비리 사건으로 판사의 불명예 퇴진이 잇따르는 등 악재도 있었다. 퇴임 후에는 2000년 영산대 석좌교수·명예총장에 취임했고 2004년부터 영산법률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지난 1992년 9월 22일 윤관(오른쪽)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대법원 관계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1992년 9월 22일 윤관(오른쪽)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대법원 관계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상훈으로는 청조근정훈장(1999년)과 국민훈장 무궁화장(2015)이 있다. 자랑스러운 연세인상(1994년)과 자랑스러운 해남윤씨상(2000년)도 받았다. 저서로 ‘신형법론’을 남겼다.

대법원은 법원장(葬)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예정이다.

박준희 기자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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